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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재미있다, 예산 이야기] 신안산선 예산 ‘희한한 줄다리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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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해마다 국회에선 예산을 놓고 숫자싸움을 벌인다. 하지만 숫자는 예산의 겉모습이다. 그 속에 숨어있는 사람을 봐야 예산이 바로 보인다. 지난 2일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신안산선이 대표적이다.

신안산선은 여의도에서 경기도 안산·시흥을 잇는 ‘신 황금노선’이다. 2017년 완공되면 1시간이 넘던 출근시간이 30분으로 단축된다.

노무현 정부 출범 초인 2003년 여의도~목감(시흥)~선부(안산)를 잇는 노선에 대한 예비 타당성조사가 실시됐다. 조사 결과 선부 대신 석수골(안산)을 지나는 기본계획노선을 마련했다. 선부동과 석수골은 모두 열린우리당 창당 멤버인 천정배(안산 단원갑) 의원의 지역구였다. 그런데 2004~2006년 시흥시가 잇따른 대규모 도시개발계획을 발표하면서 안산의 경쟁자로 부상했다. 고(故) 제정구 의원의 참모 출신인 백원우·조정식(각각 시흥 갑·을) 두 의원은 “유동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시흥으로 노선을 유치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 결과 열린우리당 내 ‘시흥파’인 백·조 의원 대 ‘안산파’인 천정배·임종인·제종길·장경수 의원 간의 경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안산 출신 국회의원 4명 중 2명이 한나라당으로 바뀌었다. 특히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된 박순자(안산 단원을) 의원이 안산 노선을 석수골 대신 중앙역 쪽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박 의원은 중앙역 유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원내대표단에게 국토해양위로 보내달라고 고집했다. 신안산선 유치전은 18대 국회에선 박순자 의원과 천 의원의 여야 대결로 변모했다.

급기야 국토해양부는 2008년 말 ‘신안산선 지역갈등 해소 연구’라는 제목의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천 의원 측은 “박 의원이 신안산선 노선에 트집을 잡아 재용역을 하게 해 기본계획 확정고시를 1년이나 연기시켰다”고 비판했다. 국토해양부는 고심 끝에 시흥노선과 안산노선을 모두 만들기로 했다. 여의도에서 출발한 신안산선은 광명에서 갈라져 각각 시흥시청과 중앙역을 통과한다. 시흥노선은 소사~원시선을 통해 석수골과 선부와 연결된다. 시흥노선은 민주당 의원들의 지역구를, 안산노선은 한나라당 의원의 지역구를 지나는 셈이다. 일종의 ‘윈-윈’이다.

신안산선은 내년도 예산에 기본설계조사비 명목으로 20억원이 책정됐다. 국토해양부에선 60억원을 올렸는데 기획재정부가 40억원을 깎았다. 그래서 예산안 심사과정에서 금액을 조금이라도 올리려는 안산·시흥 출신 의원들의 새 경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선승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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