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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읽기 BOOK] 역사가 판단한다 ? 오만을 정의로 위장한 사람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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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역사 사용설명서
마거릿 맥밀런 지음
권민 옮김, 공존
288쪽, 1만5000원

역사 담론을 다룬 이 책의 원제는 ‘The Uses and Abuses of History’. 이를 요즘 감각대로 『역사 사용설명서』라고 옮긴 이 책은 평이하다. 영국의 여성학자인 저자는 현학적 토론 대신 대중 눈높이를 겨냥한 스타일을 선보인다. 핵심 메시지는 “역사를 둘러싼 과도한 열기를 식히라”는 쪽이다. 우선 “역사에서 교훈을 찾자”는 생각부터 벗어나야 한다. 가장 경계하는 것은 “역사가 판단해줄 것이다” 는 식의 자주 듣는 호언장담이다.

책을 쓴 동기도 걸핏하면 그런 말을 했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습관성 역사 남용에 질렸기 때문인데, 저자가 보기에 그건 “정의로 위장된 오만”(247쪽)이거나 세상을 단순화하는 잘못이다. ‘공공의 기억’을 유지하기 위해 국가 주무 부처가 따로 있지만, 역사 오·남용에 능했던 이들은 정치인, 그 중에도 독재자였다. 그들은 과거 왜곡을 넘어 숫제 파괴-창조 하려했다. 프랑스혁명의 총아 로베스피에르를 보라. 그는 새로운 달력(혁명력)을 제정해 완전히 새 역사를 쓰려고 했다. 중국 마오쩌둥, 옛 소련의 레닌·스탈린도 빠질 수 없다. 이 책은 역사 속의 숱한 ‘역사 오남용’의 사례가 볼만한데, 스탈린의 경우 라이벌 트로츠키 이름 자체를 모든 기록에서 지워버렸다. 일본 정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현대사·고대사 모두를 ‘관리’하고 있는데, 고대사의 경우 고고학자들이 왕실 무덤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차단한다. 순수 일본 혈통이라는 신화를 유지하려는 안간힘이다.

눈여겨 볼 대목은 지금의 우리도 몸살을 앓고 있는 과거사를 둘러싼 소동에 대한 저자의 경고다. 그는 남아공·호주·프랑스의 사례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하는데, 한번 쯤 귀 기울여볼 만하다.

“다른 시대에 다른 신념에 따라 행한 일을 사과한다고 과연 현재 사회에 도움이 될까?”(45쪽) “역사를 너무 많이 돌아보고 사과를 통해 어설프게 역사를 고치다 보면, 현재의 어려운 문제를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할 위험이 있다”(51쪽) 한 가지, 저자는 책 곳곳에서 서구중심주의의 기존 역사를 ‘심하게’ 방어한다. 그에 대한 여러 비판도 역사 오용의 사례라는 주장인데, 그런 일방적 목소리는 동의하기 어렵다.

조우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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