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기업이 낙천자 피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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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권 공천이 시작되면서 공기업이나 정부 산하단체장에 대한 낙하산 인사가 다시금 꼬리를 물고 있다. 이미 내정된 자리만 봐도 한국토지공사.한국방송광고공사.언론재단 등이다.

전문 식견이나 경험이 전혀 없는 정치인 출신들을 단순히 공천과 관련한 '교통정리' 차원에서 주요 공기업 임원이나 정부 출연 또는 위탁기관의 장(長)으로 속속 포진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2여 공조 파기를 외치는 자민련 인사들도 이 낙하산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니 더욱 기가 찬다. 이들 자리가 낙천자들을 달래고 다독거리는 무슨 피난처인가.

정부 스스로 공기업은 주인의식이 결여됐기 때문에 사업 추진이 비효율적이고 예산.인력을 방만하게 운영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해 온 터다.

지금 와서 검증되지 않은 정치권 인사들을 경영층에 앉혀 어떻게 경영의 자율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책임경영체제를 확립하겠다는 얘기인가.

정부 출연 및 위탁기관도 공기업은 아니지만 정부를 대신해 공공 목적을 실현하는 기관이다. 유사.중복 기능을 통폐합하고 민간기업에 준하는 경쟁력 확보를 내걸며 새 출발을 다짐한 지가 바로 엊그제다.

그런데 그 책임자 자리를 정치인 '대기소' 나 낙천자 피난처쯤으로 전락시키니 이게 될 말인가.

조만간 공석이 되는 공기업 사장직에 공천을 포기하는 여권의 원내.외 지구당위원장들이 내정되고, 현재 공기업과 산하 기관의 임원들이 대거 출마함에 따라 이들의 빈 자리도 정치권 인사들로 메울 예정이라고 한다.

집권당 프리미엄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는 집권 초기에나 있을 법한 일이지 지금은 그때가 아니다. 그러잖아도 공공부문 개혁은 민간부문에 비해 속도가 더디고 내용이 부진하다고 정부 안팎에서 질책을 받고 있는 처지다. 이러고서야 무슨 낯으로 공공부문 개혁을 외쳐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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