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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칙왕'서 열연 송강호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4면

"정말 후회없이 했습니다. 김 감독하고 호흡이 굉장히 잘 맞았어요. "

송강호(33)와 처음으로 대면한 기자는 두 번 놀랐다. '배, 배, 배신이야 배신' 이라는 '넘버 3' 에서의 마음 급한 어투로만 익숙해있던 참에 딱딱 끊어서 나오는 또렷한 말투와 달변이 신기하기까지 했고, 물 만난 고기처럼 몸 전체에서 퍼져나오는 퍼덕이는 활기는 '쉬리' 이후 의기소침해 있으리라던 예상을 멋지게 비켜갔다.

김지운 감독( '조용한 가족' )의 두번째 작품 '반칙왕' (4일 개봉)에서 그는 주연을 맡았다. 6년간 몸담았던 연극판(91년 데뷔)에서도, '초록물고기' '나쁜영화' '넘버3' '쉬리' 등 영화로 넘어와서도 그에게는 단역과 조역이 전부였다.

다행히 '넘버3' 에서의 '헝그리정신' 이 화제가 되면서 TV 광고에도 얼굴을 내미는 행운을 잡았지만 '쉬리' 에서의 불안정한 연기는 "송강호는 연기 폭이 좁다" 는 인식을 퍼지게 했다. 그가 보란 듯이 재기했다.

직장 상사에게 시달리던 샐러리맨이 프로 레슬러로 변신한다는 이야기인 '반칙왕' 은 관객을 포복절도케하는 '성공한' 코미디다.

한국 감독에게서 좀 체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감수성을 가진 김 감독의 연출 덕이긴 하지만 그 성공의 절반은 송강호의 '원맨쇼' 에 돌려도 무리가 없을 듯 싶다.

그는 의외로 자신의 얘기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코미디언이 주도하는 'TV토크쇼에서 그는 '꿔다 놓은 보리자루' 같았다). 그러나 '연기' 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눈이 빛났다.

▶ 김 감독과 특별히 잘 맞는 이유는 : 학교(경상대)때 교수님이 '관객들은 배우들이 내뱉는 대사를 듣기 위해 영화를 보지 않는다. 대사와 대사 사이의 연기를 보러 온다' 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다음 대사가 나오기까지의 호흡과 뉘앙스, 그게 연기라는 말일 것이다.

김 감독은 연기의 이런 측면을 잘 알고 있다. 나는 현장의 분위기와 역동성을 따라서 연기를 끌어내는게 장점이다.

현장과 화학작용한다고나 할까. 김 감독이 어느 자리에서 내가 '동물적으로 연기한다' 며 칭찬처럼 들리는 말을 했는데 바로 그렇다. 상황을 포착해서 본능적으로 연기하는데 능하다. 김 감독은 나의 이같은 특성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쉬리' 에서는 실망스러웠는데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너무 안이하게 임했던 것 같다. 처음 한 두번 엇갈리다 보니 계속 끌려가면서 페이스를 못 찾았다. 강제규 감독은 인물에 대해 어떤 전형을 설정하고 영화를 끌고 가는 형이다.

북한군은 이러하고 공작원은 저러해야 한다는 틀이 강하다. 이런 전형성이 잘 조합되면 폭발적인 영화가 탄생한다. 그러나 연기자가 개입할 여지는 상대적으로 적다. 내 스타일에 안 맞았던 것 같다.

▶연극과 영화의 차이점은 : 10년간 연극과 영화에서 반반씩 연기했다. 영화가 더 어렵다. 집중력을 훨씬 더 많이 요한다. 영화는 현장이 산만하다. 그 속에서 집중력을 끌어낸다는 건 상당한 경험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반면 연극은 조명 등 무대 전체가 연기자가 편하게 연기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기때문에 연습만 잘 돼 있으면 그만큼 쉽다. 영화판에 연기자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특히 여성연기자가 적다.

'박사사탕' 의 설경구나 나나 모두 연극판 출신이다. 그동안 영화 관계자들이 연기자를 발굴하는 작업을 소홀히 해왔던게 아닌가 싶다.

앞으로 주연 아니면 안할 거냐고? 무슨 소리냐, 나는 주연보다는 주역배우가 되고 싶다. 등장하는 장면 수는 적어도 영화에 꼭 필요한 역, 그런 거라면 단역이든 조역이든 언제든 'OK!' 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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