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서 북한 호위국 팀장으로 카리스마 연기 김승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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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연기 생활 20년째를 맞은 김승우. 인기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세련된 북한 엘리트의 모습을 완벽히 소화해내 호평을 받고 있다. 극중에서 주로 입는 클래식 스타일 슈트도 그의 아이디어다. [강정현 기자]

배우 김승우가 연기자의 길을 걸은 지 20년이 됐다. 올해로 마흔이니 생애 절반을 꼬박 배우로 살아온 셈이다. 영화 ‘장군의 아들(1990)’을 시작으로 ‘연기자 명부’에 이름을 올린 그는 그간 제법 묵직한 배우로 성장했다. 연기의 섬세함이나 화사함에서 그는 당대의 톱 클래스를 넘나든다.

정상이 코 앞인 이에겐 상승보다 추락의 가능성이 더 크다. 아닌 게 아니라, 흥행만 따지자면 최근 몇 년 새 대형작이 거의 없던 그였다. 하지만 그는 꼭대기를 탐하는 대신 방향을 살짝 틀기로 했다. KBS2 드라마 ‘아이리스’는 그런 그가 작심하고 선택한 ‘표지판’이다. 제작비만 200억 원이 들어간 블록버스터 드라마에서 그는 북한 호위국 팀장 박철영 역을 맡았다. 주인공 김현준(이병헌)에 비하면 비중이 크게 떨어지는 조연급이다.

“처음엔 다들 말렸어요. 그런데 느낌이 확 오는 걸 어쩌겠어요. 분량은 적더라도 김승우이기 때문에 보여줄 수 있는 게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죠.”

실제로 김승우 둘레 사람들은 그를 뜯어 말리느라 지독히도 고생했다고 했다. 단 한 사람, 아내인 김남주만 “모험해볼 만한 매력적인 배역”이라며 그를 토닥였다. 김승우는“20년간 늘 선한 연기만 해왔다”고 스스로를 진단했다.“그런 고착된 이미지를 깨고 싶다”는 게 웅크리고 있던 바람이었다. 그러니 냉철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박철영 역은 그로선 딱이었다.

“‘아이리스’는 20년 연기 생활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 있어요. 이토록 날카롭고 강한 캐릭터는 처음이죠. 해보지 않았던 연기를 하려니 자연스레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과거 출연작에 비하면 몇 장면 되지 않지만, “악몽을 꿀 정도”로 신경이 곤두섰던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촬영이 끝나면 기운이 쏙 빠진다”고 말했다. 감정을 내지르기보다 꽁꽁 숨겨야 하는 배역이 낯설었던 탓이다. 이 대목에서 그는 아내 김남주 얘기를 슬며시 꺼냈다.

“김남주란 배우가 기존 이미지를 깨고 ‘내조의 여왕’에 출연한 건 사실 모험이었어요. 그런데 성공했잖아요. 제게 ‘아이리스’도 그런 의미에요. 일종의 연기 도전이죠. 다행히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으니 너무 좋습니다.”

요즘 인터넷엔 그를 부르는 별칭이 떠돈다. ‘미친 존재감’ ‘작렬 카리스마’ 등이다. 짧은 장면 속 그의 숨막히는 연기에 사로잡힌 네티즌들이 붙인 말이다. 주인공에 비하면 턱 없이 부족한 화면 안에서 어떻게 이런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냈을까. 그는 “북한 엘리트의 행동 방식에 대해 철저히 연구했다”고 말했다. 탈북 인사를 만나 ‘과외 수업’을 받기도 했단다. 특히 대사에 공을 많이 들였다고 했다. “움직여” “꼼짝마” 등 특유의 단문 대사는 그가 직접 다듬은 것이라고 한다.

배우로서 ‘터닝 포인트’를 돌고 있는 그는 ‘안성기’란 이름을 가슴 속에 품고 있다. “안성기 선배처럼 배우로서 한 길을 고집스레 가고 싶다”고 했다. 연기의 지평을 성공적으로 넓히고 있는 그에겐 기대해도 좋을 목표로 들렸다.

인터뷰 말미에 아내 김남주가 “저녁은?”이라며 전화를 걸어왔다. ‘내조의 여왕’으로 연기 변신에 성공한 김남주는 남편의 새로운 도전에 든든한 후원자다. 그런 내조 덕분일까. 크지 않은 배역임에도 김승우의 ‘연기 모험’은 시청자의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날 밤, ‘내조의 여왕’과 ‘아이리스’는 밤 늦도록 와인 축배를 들었을 테다.

정강현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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