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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머신 21] 종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옛 잉카제국의 수도 페루 쿠스코로 출장 온 A씨는 일요일이 되자 인터넷을 접속, 어려서부터 서울서 다니던 교회에서 예배를 보았다. 담임목사의 설교도 듣고 찬송가도 따라 부르고 전자화폐로 헌금도 했다.

같은 시각 서울. 얼마전 불교로 개종한 B씨는 가상공간에만 존재하는 사이버 법당에서 예불을 올렸다. 초파일이면 이제 절을 찾지않고 사이버 법당에 등을 달 수도 있다.

인간의 정신적.영적 세계를 이끄는 종교라고 해서 시공을 뛰어넘는 사이버 시대가 비켜갈 리 없다.

앞으로 종교는 수용자.공급자 혹은 신도.성직자 양 측면에서 다원화될 것이다. 이미 사이버 종교활동이 일반화된 미국의 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1990년대말 10명 중 3명 꼴로 종교를 바꾸고 있다.

60년대에는 25명 중 1명이 개종했었다.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종교와 접할 수 있으므로 자신에게 적합한 종교를 손쉽게 찾을 수 있게 된 까닭이다.

개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여러 개의 종교를 신봉하는 신도들도 늘 것으로 보인다. 뿐 아니라 몇 개의 종교를 조합한다든지 혹은 사라진 종교가 신비주의를 강화해 살아나는 등 새로운 종교도 많이 생겨날 것이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세계의 종교가 전시돼 그야말로 '종교의 자유' 를 만끽할 수 있게 된다.

이원규(감신대)교수는 미래 종교에 대해 "신비적이고 신화적인 종교가 대중에 매력을 줄 것" 이라면서도 "제도적인 종교가 쇠퇴의 길을 걷겠지만 지금보다 복음적.영적.구속적 성격이 더욱 강해질 것" 으로 내다봤다.

곧 진리와 함께 너와 나의 마음과 호흡이 통하는 인간화로 나가야만 사이버 종교계에서 우위를 지키며 살아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은윤(한국불교선학연구원)원장은 "세계 4대 종교는 인간의 신성 문제와 보편윤리에 합치돼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며 "사이버 공간에서 새로 태어날 종교도 이를 거스른다면 사이비 종교로 곧 도태되고 말 것" 이라고 밝혔다.

성직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기성 종교 제도에 비해 사이버 공간에서는 성직자와 신도가 일대 일로 만남으로써 성직자 의존도가 줄어들게 돼 인간의 신성.심성 탐구에 훨씬 더 깊이를 갖추어야만 선교 내지 포교가 가능해진다는 설명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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