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중국 영화 스텝진 큰 차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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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한국 영화가 다루는 소재와 배경 무대의 폭이 넓어지면서 해외현지 촬영(로케)이 빈번해지고 있다. 한때 러시아가 인기였으나 요즘은 중국이 자주 꼽힌다.

1백% 중국 현지 촬영으로 이루어진 무협영화 '비천무' (신현준.김희선 주연)와 의열단 이야기를 다룬 '아나키스트' (정준오.김상중 주연)가 최근 촬영을 모두 마쳤다.

현지 촬영에 투입된 한국 스텝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아직은 자본주의화가 덜 된 사회주의 국가 중국 특유의 문화적 이질감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제작비 40억원의 '한국형 블럭버스터' 를 지향하는 '비천무' 팀은 한국 70명, 홍콩 30여명, 중국 1백여명 등 3개국 2백여명의 스텝으로 구성돼 3개월간 상하이를 중심으로 중국 각지를 돌며 촬영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와 문화적 감성도가 비슷한 홍콩팀과 아직은 '뻣뻣한' 중국팀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홍콩 스텝들은 확실히 '프로' 의 냄새가 났다. 이들은 우선 한국어를 배우는데부터 열심이었다. 전문적인 용어야 몸짓.손짓으로도 충분히 소통이 되지만 간단한 일상대화를 위해 말 배우기에도 정성을 쏟았다.

그 결과 그들은 며칠도 안 돼 '뒤로' '시간없어,빨리빨리' '분장팀' '의상팀' '멋지다' '한번 더' '그만' 등을 배웠다. 나중에는 입에 익어 중국 스텝들에게도 한국어로 지시할 정도였다.

그러나 중국 스텝들은 정반대였다. 매사 소극적이었다. 이 때문에 액션장면 촬영을 위해 일했던 홍콩 스텝들이 대부분 철수한 촬영 후반에는 한국 스텝들이 중국말을 배워야했다.

'안찡' (조용) '짜이라이 이거' (한번 더) '팅(그만)' '덩이샤(잠깐만 기다리세요)' '콰이콰이(빨리 빨리)' 등 간단한 중국어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배울수 밖에 없었다.

또 중국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근무시간를 '철저히' 지켰다. 1분만 늦어도 들고 있던 조명을 다른 데로 돌리면서 '시간이 초과됐음' 을 알렸다. 수당을 더 달라는 얘기였다.

홍콩팀의 경우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단 촬영을 빨리 끝내야 한다' 며 그같은 요구를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앞으로 훌륭한 우리 영화의 로케기지가 될 전망이다. 중국 스텝들이 가진 무시할 수 없는 장점 때문이다.

우선 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숙련된 기술자가 많다. '비천무' 에서는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스모그' 효과가 자주 사용된다. 이 연기를 피우는 중국의 '스모그맨' 은 30년동안 이 일만 해왔다고 한다.

일단 일에 들어가면 최선을 다한다는 점도 강점이다. 강물에서 높이 솟아오르는 장면은 몸에 1.75㎜ 와이어를 부착한 뒤 크레인으로 끌어올리는 위험한 작업이다. 중국인 엑스트라들은 'OK' 사인이 떨어질 때까지 몇번이나 차가운 강물에 빠져야 했다.

그런데도 아무런 군소리가 없었다. 어쨌든 서로 다른 체제에서 장기간 살아 오면서 생겨난 이같은 문제점들의 극복은 앞으로 더욱 잦아질 중국 현지 로케, 나아가 한.중 문화교류에서 신경을 써야 할 대목라 할 수 있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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