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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변혁중] '함정'도 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국 사회가 크게 출렁이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의 낙선운동에서 촉발된 거대한 물결이 전 사회를 흔들고 있습니다.

이 변화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중앙일보는 우리 사회가 겪는 '또 다른 변화' 의 실체를 독자 여러분과 밝히기 위해 네차례의 전문가 발제에 이어 독자 여러분의 토론장을 마련하려 합니다.

의견이 있는 분은 팩스(02-751-5228) 나 e-메일로 보내주시거나 게시판에 의견을 적어 주시기 바랍니다.

게시판:(http://bbs2.joins.co.kr/servlet/ViewList?ID=kms)

[발제 2]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시민단체의 도전이 사회를 흔들고 있다.

낡은 정치에 식상한 국민은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 있고, 정치권은 대응방안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타격이 작은 민주당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위기고, 득실이 엇비슷한 한나라당은 어정쩡한 모습이며, 가장 피해가 큰 자민련은 음모론을 제기하며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과연 결과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민주당과 시민단체의 '짜고 치는 고스톱' 이라는 의혹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이번 파장의 결과가 선거에서 시민단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타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상황에 따라서는 고사(枯死)하고 있던 JP(金鍾泌 자민련 명예총재)와 자민련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마저 점쳐지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주의의 청산은 커녕 강화를 가져올 뿐이고, 이는 시민단체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셈이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 의 가능성을 우려하는 까닭은 지금까지의 현실이 그래왔기 때문이다.

가깝게는 문민정부가 팽(烹)하려 한 JP가 공동정권의 한 축이 된 사실을 들 수 있다.

조금 더 멀리 보면 '파시스트 박정희' 가 그렇게도 견제했던 '불온세력' 이 오히려 지금은 시민혁명의 주체가 돼 현실을 주무르고 있다.

한국 현대사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5.16은 4.19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고, 노태우(盧泰愚)정권의 등장은 6월 항쟁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특정한 사회운동이 힘을 얻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1980년대 학생운동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까닭은 당시 제도권에서 활동하던 어떤 집단도 소외계층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70년대 반체제 지식인들이 관심의 대상이 됐던 까닭은 당시 질서가 기본권의 문제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지금 시민단체가 힘을 얻는 까닭은 제도권 정치가 국민의 요구를 수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제도와 관행이 국민의 요구를 소화하지 못할 때 외부로부터의 운동은 힘을 얻는다.

그러나 그 결과가 운동을 하는 집단의 의도대로 관철될지는 또다른 문제다.

조선시대 탐관오리의 학정에 저항하던 농민운동이 오히려 중앙권력의 강화를 초래한 사실은 역설적이지만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서구 중세의 종교개혁 운동이 기독교적 질서의 정당성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 출발했지만 결과는 자본주의라는 반기독교적 질서의 첫 단추를 끼운 일이 돼버렸다.

현재 한국사회가 변화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 변화가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예측을 불허한다.

시민단체의 의도가 가감없이 관철되기에는 여러 가지 여건이 매우 유동적인 것으로 보인다.

'시민없는 시민운동' 을 넘어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시민운동' 으로 성숙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재정의 독립은 말할 것도 없다.

시민운동의 전문화 및 차별화 또한 필수적인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약 5백개의 단체가 연합한 이번 운동은 특정한 국면에서 나타난 매우 예외적인 상황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예외적인 상황인 만큼 의도하지 않은 결과 또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유석춘 교수 (연세대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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