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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에 '딴스홀'을 허(許)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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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친일진상규명법 개정안 처리 문제로 정치권에서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그 와중에 여당 정치인 두어명이 낙마하거나 흠집이 났고, 나머지는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를 하고 있다. 그런 소음들을 귓전에 흘리면서 최근 몇권의 책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우선 역사학자 박지현(35.서원대 세계지역문화연구소 상임연구원)씨가 쓴 '누구를 위한 협력인가-비시 프랑스와 민족혁명'(책세상).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에 패한 프랑스 땅에 세워진 비시 정권이 사실은 독일의 강압보다는 프랑스 정치인.지식인들의 자발적인 대독(對獨) 협력의 산물이라는 점을 소상히 밝힌 저서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프랑스는 우리 과거 청산의 모델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많은 이가 일제 치하의 한국인을 친일파와 독립운동가라는 이분법적 틀 안에서 이해하고 있다"며 "그러나 자발적으로 친일이나 독립운동을 한 자들보다 시대적 조류에 따른 인간 조건에 순응하며 지내야 했던 자들이 훨씬 많았다"고 말한다. 당연해 보이는 박씨의 말이 새삼스러운 것은 요즘 우리 사회에서 눈에 핏발 세운 근본주의자.원리주의자들의 목소리가 그만큼 드세기 때문일 것이다.

나영균(78)이화여대 명예교수의 '일제시대, 우리 가족은'(황소자리)의 재미도 앞의 책 못지 않다. 나 교수의 부친(나경석)은 일제하 사회주의자로 독립운동을 하다 감옥까지 다녀왔다. 저자는 사회주의자로 평생 나라를 걱정하며 산 나경석이 틈만 나면 바람을 피웠다는 이야기(여류음악가 윤심덕은 김우진 이전에 먼저 나경석에게 "함께 죽자"고 졸라댔다고 한다)까지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출판평론가 표정훈(35)씨의 '나의 천년'(푸른 역사)도 아버지.할아버지 등 핏줄 이야기를 담았다. 저자의 할아버지(표문학)는 일제하 공산주의자. 1988년에 표정훈씨는 할아버지와 함께 서울 교보문고에 들른다. 서가에 꽂힌 마르크스.레닌 계열의 책을 본 할아버지가 호기심에 차 손자에게 묻는다. "너희들 아직도 이런 책 읽느냐?"

세권의 책이 공통적으로 담고 있는 메시지는 세상살이의 복잡함과 중층성이다. 예를 들어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긴 표문학은 한때 같은 남로당원이던 박정희가 세운 정권에서 새마을 운동에 투신한다. 이유는 '그(박정희)가 추진한 국가발전 계획에서 초기 소비에트공화국의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후세들이 늦게 태어난 것을 이점 삼아 이런 아이러니를 감히 비웃을 수 있을까.

1999년 출판돼 화제를 몰고 왔던 김진송씨의 책 '서울에 딴스홀을 許(허)하라'를 떠올린다. 책 제목은 37년에 다방 마담과 여급.기생 등이 "서울에 댄스홀을 허가해 달라"며 총독부 경무국장에게 보낸 탄원서에서 따왔다. 굳이 신문화사.미시사라는 학술용어를 동원할 필요도 없이, '서울에…'에 담겨 있는 일제하 조선인들의 사는 모습은 '친일파'와 '독립운동가'의 이분법이 얼마나 거친 분류인지를 웅변해 준다.

그 복잡하다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푼 사람은 알렉산더 대왕이다. 단칼에 잘라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지금은 알렉산더를 흉내 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탈이다. 복잡한 것은 복잡하게 풀 필요가 있다. 지나친 단순화는 반(反)지성으로 전락하기 쉽다. 하기야 요즘엔 이런 말만 꺼내도 "과거를 청산하지 말자는 거냐"는 지청구를 듣는다. 그래도 한 마디 부탁하고 싶다. "과거사에 딴스홀을 허하라"고. 그래야 독립운동가들의 삶도 더욱 빛난다고 나는 믿는다.

노재현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