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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해남산사서 만난 장선우 감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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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음란물인냐 아니냐로 논란을 빚고 있는 영화 ‘거짓말’을 만든 장선우 감독은 전남 해남의 한 산사 골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아픈 골치도 식히고 다음 영화로 준비 중인 에니메이션을 궁리하기 위해 땅끝까지 내려왔다고 말했다.그는 ‘거짓말’은 보는 사람의 입장에 따라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다의적(多義的)영화라며 이 점에 관한 심도있는 논의가 간과된 지금의 논란은 생산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포르노란 공연히 성적 흥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만드는 것인데 성(性)을 코드로 우리사회와 인간에 대해 발언하는 게 어째서 포르노냐고 반문했다.그러나 본지 여론조사(15일자)에서 ‘거짓말’을 본 사람 중 59%가 음란물이라고 답해 감독과 여론의 괴리는 꽤 넓고 깊다.

이같은 여론을 무시할 수없는 것 또한 제도의 고민이다.다음은 언론 접촉을 피하고 있는 장감독과의 이른바 직격 단독인터뷰이다.

[만난사람= 이헌익 편집위원]

- 한 시민단체가 음란물이라 고발하고 검찰이 조사하고 있다.

" '거짓말' 을 음란 여부에 관한 상식적 수준으로 판단해선 안된다. 나도 포르노를 싫어한다.

이 영화는 인간의 슬픔에 관한 보고서다. 슬픔의 실체를 보이기 위해 관객을 지루하고 불편하게 했다. 이 때문에 저게 무슨 영화냐는 반응도 있다. "

- 표현이 충격적이어서 그렇지 않나. 예컨대 굳이 '구멍' 이라는 자막 장면을 왜 썼는가.

"영화적 발언을 위한 충격적 표현과 성적 자극은 다르다. '구멍' 같은 자막은 오히려 분위기를 깨기 위해 그랬다. 농담처럼 낙서처럼 표현해 관객이 거기에 몰입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다.

포르노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

- 그러나 그런 장치에 관객들이 더 자극을 받으면 어떻게 되는가.

"그렇다면 영화를 잘못 본 것이다. 편견과 오해 또는 상식의 잣대로 떠드는 건 절망적이다.

영화의 두 주인공은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이다. 그들 나름의 유별난 사랑을 한 것 외에 무슨 나쁜 짓을 했나. 그들은 그렇게 했고 그걸 이해하면 그뿐 아닌가. "

- 그런데 왜 많은 관객이 음란물이라고 규정한다고 생각하나.

"연꽃을 든 부처의 진심을 본 사람은 마하가섭뿐이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영화를 본다. 슬프게 봤으면 슬픔을 아는 사람이고 더럽게 봤으면 더러운 측면이 있을 것이다.

또 웃었으면 유희정신이 있고 변태적으로 보면 변태의 일면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

- 성묘사에는 그래도 일정한 사회적 금기가 있어야 하지 않나.

"나는 리얼리스트다. 금기가 완전히 없어지라는 건 아니지만 그 금기의 정치적 의미는 계속 물어야 하는 것이다. "

- 왜 하필이면 섹스에 빗대어 그 물음을 추구하는가. 섹스란 좀 비밀스러워야 하고 그럴 때 오히려 인간의 자존이 지켜지지 않는가.

"섹스는 몸의 언어다. 그 언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 문제뿐 아니라 인간의 미래.뿌리까지 다 얘기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포르노는 그런 얘기를 않는다. 단순히 성적 흥분을 팔 뿐이다. "

- 감독은 자신의 영화를 많은 사람이 보길 원한다.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과다한 표현을 한 것은 없나.

"하고 싶은 얘기와 전체의 형식을 맞추기 위해, 또 대중의 수용 한계치를 판단해 그룹섹스 등 지나친 장면은 오히려 뺐다. 추하다 싶으면 잘랐고 아름답게 꾸몄다 싶으면 버렸다. 우리사회는 사람을 슬프게 만드는 시스템이고 거기에 맞춰 슬픈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

- 감독의 의도가 그렇더라도 철학적 역량이 못미쳐 결과적으로 음란물로 보인다면 그것대로 책임질 문제 아닌가.

"나는 목표를 향한 과정에 있다. 나는 어쨌든 부처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장자.노자의 길도 따라간다. 아집과 망상을 버리고 실상과 태허(太虛)를 보자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오해를 산다고 해서 그걸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영화의 목적이 과연 음란분위기를 조장하자는 것인가. "

- 영화란 개인작업이지만 이를 공표하면 당연히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 누군가는 이 영화의 '표현의 자유' 를 "불량식품을 만들어놓고 경제활동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과 같다" 고 했다.

"성분분석을 안해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건 편견이다. 우리사회와 인간의 실체를 드러내는 게 어떻게 불량식품인가. 우리사회가 건강하다면 나도 예쁘고 달콤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 "

- 불량식품인지 아닌지의 판단은 유보하자. 문제는 이 영화에 나오는 가학.피학 장면을 보고 이를 공연히 따라하는 경우는 어떻게 하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가 그런단 말인가. 그러던 사람조차 오히려 안하게 될 것이다. '흉내낼거야' 라며 걱정부터 하는 사람은 자기만이 판단력이 있고 남들은 없을 거라는 노파심에 잡혀 있다. 자신의 어쭙잖은 지식.경험을 갖고 남을 평가하지 말라는 게 이 영화를 만든 목적이다. 부처도 그런 분별심을 없애라고 했다. "

- 부처가 이 영화를 보면 내 길을 잘 따른다고 생각할까.

"그렇게 생각한다. 부처님은 아마 공(空).허(虛).슬픔을 볼 것이다. "

- 전작들도 그렇고 영화를 만들면 논쟁에 자주 휘말리는 데 화제의 중심에 서려는 소영웅주의 같은 걸 즐기려고 그러는 건 아닌가.

"영화 속 문제를 일방적으로 해결하고 끝내는 영화를 만들어 그러는 것같다. 나는 관객들과 대화하는 열린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논쟁적일 수밖에 없다. 내 성격은 센세이셔널한 게 싫다. 그러나 감독으로서는 리얼리스트다. "

- 그 리얼하다는 게 성문제를 다룰 때는 건설적으로 안느껴지는 것이 문제다. 사회에 침을 뱉어 놓고 그걸 몰래 훔쳐보는 것같다.

"그런 느낌 때문에 나를 더 비난한다. 나는 기존질서를 가부장적 권위주의 체제로 보고 있다.

성문제는 특히 더 그렇다. 이를 드러내니까 불편해하는 거다. 가부장적 권위의 많은 부분이 정말 지킬 만한 가치가 있는 가를 나는 영화로 묻고 있다. 섹스에 금기가 많으면 정치에도 금기가 많은 사회다. 그리고 성이 더 내면적이고 본질적이기 때문에 이를 다뤘다.

음란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

- 사법처리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 사회의 실체가 그렇다면 나로선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난센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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