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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가 봐도 ‘문제 많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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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제사회 기여를 위해 파병되는 우리 장병들은 2012년 총선·대선부터 실시되는 재외국민 선거에서 투표가 어렵다는 사실이 9일 밝혀졌다. 중앙선관위가 최근 한나라당 김태원 의원에게 제출한 재외선거관계기관협의회 자료를 통해서다. 국무총리실·외교통상부·국방부 등이 지난 5월 정리한 회의자료에서 선관위는 “파병 군인은 가장 우선적으로 헌법상 권리를 보장해야 할 대상”이라고 전제한 뒤 “그럼에도 작전지역을 이탈하지 않으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밝혔다. 선관위는 “파병 군인이 사실상 재외선거제도의 사각지대에 있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통과된 공직선거법 등은 외국에 머물고 있는 영주권자와 일시 체류자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에서 투표권을 갖도록 했다. 하지만 반드시 현지에 있는 재외공관을 찾아가야 투표가 가능하도록 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배에서 투표하는 선상 투표와 파병 부대 내 투표소 설치 등이 법 개정 과정에서 논의됐지만 반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파병 장병도 투표를 하려면 현지의 한국 공관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 문제는 파병 지역이 대부분 재외공관이 있는 수도와는 거리가 먼 위험지역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지방재건팀(PRT)과 경비병력 등 430여 명의 파병을 추진 중인 아프가니스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교전도 가능한 상황에서 우리 군 장병들이 투표를 하려면 중무장으로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게 불가피하다. 또 투표 당일 현지 부대 경비에도 구멍이 뚫릴 수 있다. 해적 퇴치를 위해 인도양에 파견된 청해부대원 약 300명도 투표를 위해선 일단 상륙한 뒤 육로로 한국 공관까지 이동해야 하는 게 난제다. 선관위 관계자는 “과거 자료를 찾아본 결과 7대 총선(1967년)과 7대 대선(71년) 때 월남 파병 장병 4만1000여 명이 해외부재자 선거를 했었다”며 “이후 해외부재자 선거 제도가 폐지되면서 이런 길이 막혔다”고 설명했다.

◆한글 모르는 동포도 한 표=이와 대조적으로 투표권을 갖게 된 재외국민 중엔 한글을 제대로 못 쓰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선관위가 지난 7월 미국 현지 실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일부 교민은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투표할 경우 정당 또는 후보자명을 기재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영문 표기로 한나라는 ‘HANNARA’로, 민주는 ‘MINJU’로 쓰게 해 달라”는 건의를 해 왔다.

재외국민선거는 출마 후보자 확정 전에 투표용지를 발송하기 때문에 투표자가 후보자 이름을 투표용지에 직접 쓰는 ‘자서식’으로 이뤄진다. 외국 시민권을 취득해 투표권이 없는 교민들이 이를 숨기고 투표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영국의 경우 우리 국민 중 영국 시민권 취득자가 2006년 300명, 2007년 575명이지만 자진 신고를 통해 한국 국적을 상실한 사람은 연간 20여 명뿐이다. 선관위 측은 “영국 정부가 개인정보보호법에 의거해 영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 명단 제공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며 “시민권 취득 여부를 우리 공관이 확인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국내 선거인 명부와 재외국민 명부에 이중 등재될 가능성 등 여러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선거에서 비례대표 득표 결과 등을 둘러싸고 ‘무자격자 투표’ 등의 논란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번 조사를 통해 나타난 문제들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밝혔다.

강주안·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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