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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노벨 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의 문학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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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인터뷰를 일절 거절하고 있는 뮐러는 7년 전 객원교수로 몸담았던 라이프치히 대학과 약속한 ‘시학강의’에 강연자로 참석해 자신의 문학세계를 털어놨다.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56)는 칩거 생활로 유명하다. 신문·방송과의 인터뷰를 일절 거절한 채 침묵한 그녀 때문에 독일과 세계 언론은 뮐러의 문학적 발언에 목말라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과 시청사에서 헤르타 뮐러가 장시간 강연한 내용은 그 목마름을 달래주기에 충분했다. 라이프치히 대학 독일문학연구소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뮐러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동갑내기 소설가 강유일(56)씨가 현장에서 나눈 얘기를 보내왔다.

헤르타 뮐러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은 독일 통일 20주년 기념의 해에 날아올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낭보였다. 독일 국민은 10월 8일 그 발표를 들었을 때 모두들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노벨문학상 선정 소식 후 3주쯤이 지난 10월 31일, 뮐러는 그가 한때 몸담았던 라이프치히로 달려왔다. 라이프치히대 독일문학연구소는 해마다 만추가 되면 유서 깊은 ‘라이프치히 시학 강의’를 연다. 2009년 강연자로 뮐러가 선정된 것은 그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뽑히기 수개월 전인 지난 5월 교수회의에서였다. 뮐러는 7년 전 자신이 강의했던 2층 205호 세미나실에서 학생들과 둘러앉았다. “노벨상과 관계없이 나는 7년 전과 똑같아요. 다만 7년 더 늙었을 뿐이죠. 매일 노벨문학상 수상자 신분으로 살아야 한다면 끔찍할 겁니다.” 그것이 뮐러의 첫인사였다. 모여든 기자들의 출입이 금지된 채 학생들은 그녀의 문학적 고백을 듣는 특권을 누렸다.

◆뮐러 문학의 비밀은 ‘낱말상자’=그 오붓한 자리에서 뮐러는 내밀한 증언을 했다. 루마니아에서 독일로 망명할 때 그녀가 들고 왔다는 ‘낱말상자’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끔찍하도록 가난하고 외진 마을에서 왔다. 기본적 문명조차 누릴 수 없을 때 사람은 본능과 단순한 습관에 의지해 산다. 난 잡지 속에서 흥미 있는 단어들을 가위로 오려내 책상 위에 진열해 놓고 그 낱말들을 사용해 문장을 만드는 버릇이 있었다. 각각 다른 잡지와 신문들에서 잘라낸 언어들은 활자의 모양도 크기도 색깔도 달랐다. 언어들은 그렇게 잘려 나온 채 마치 역의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날 기다리고 있었다. 서독으로 망명할 때 난 그 낱말상자와 머릿속에 저장된 악몽을 휴대하고 왔다. 언어와 나의 이 결탁은 거의 중독 수준이다. 언어는 누구의 손에 잡혀 사용되느냐가 문제다. 언어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언어는 선과 악 두 진영에서 모두 사용되면서 역사를 만들어간다.”

루마니아의 척박한 땅에서 태어난 뮐러가 소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로지 언어만이 그녀의 소유였다. 언어만이 그녀의 단검이고 리볼버(revolver)였다.

◆언어의 힘에 대한 신념=“대학 졸업 후 난 트럭회사 번역사로 일했다. 정보원이 돼 달라는 루마니아 비밀경찰 ‘세쿠리타테(Securitate)’의 회유를 거절하자 나는 곧장 파면되었다. 상관에게 제발 파면시키지 말아 달라고, 이 회사에서 정년퇴직 때까지 충성스럽게 일하는 것이 평생소원이라고 간청했다. 결국 내 근무용 책상은 다른 직원이 차지했고 내 사전들은 통로에 내던져졌다. 나는 내가 다른 희생자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수장되거나 교통사고로 위장돼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국가가, 비밀경찰이 뮐러에게서 차압해 갈 수 없는 유일한 것, 그것이 언어였다. “내게 남은 것은 잡지에서 오려내 상자 속에 담아놓은 언어뿐이었다. 글을 쓰는 것은 강요된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솟구치는 열망이어서 글쓰기가 단 한번도 피곤했던 적이 없다. 모국어는 어떤 형태든 아름답고 황홀하다. 문장을 만들고 나면 나는 몇 번이고 소리 내어 낭독한다. 글 쓰는 작업 중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리듬이다.”

뮐러의 승리는 언어의 힘에 대한 신념이었다. 그녀가 언어의 힘을 깨달은 것은 비밀경찰에 쫓기던 1984년 데뷔작 『저지대』가 검열 없이 서독에서 출간돼 성공을 거둔 뒤였다.


◆강제수용소 에서 느낀 통증의 시간=뮐러는 26세 연상의 동료 시인 오스카 파스티오르와 함께 장편소설 『숨 쉬는 그네』(2009) 공동작업을 위해 우크라이나의 소련 강제수용소를 방문해 자료 수집을 했다. 뮐러처럼 루마니아 독일계였던 파스티오르는 1945년 어느 날 새벽 단지 히틀러의 동족인 독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연합군의 적으로 간주돼 소련군에게 끌려가 강제수용소에서 5년간 노역했다. 뮐러의 모친도 동시에 끌려가 죄수생활을 치렀다. 그 여행은 악몽과 상처투성이인 그녀의 개인사와 가족사를, 루마니아 독일인으로서의 종족사를 만져야만 했던 엄청난 통증의 시간이었다.

“나는 파스티오르와 함께 수용소를 찾아갔다. 옛 지하창고 등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악몽의 장소에서 파스티오르는 계속 먹어대기 시작했다. 엄청난 양을 먹어댔다. 그는 당뇨를 앓고 있었고 독일에선 절제된 식이요법을 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수용소에서 인간의 마지막 존엄이 무너지고 동물만 남을 때까지 5년간 계속 굶었다고 했다. 순간마다 죽음이 어른대는 만성적 기아 속에서 인간이 가지는 본능적 공포는 무서운 것이었다. 잡초와 감자껍질로 연명했던 그 ‘뼈와 가죽의 시간’, 그의 폭식은 그의 안에 그때까지도 남아 있는, 영원히 채울 수 없는 운명적 기아에 대한 공포에서 오는 것이었다.”

양식도 희망도 없는 그 영점지대로의 추방, 철저하게 비인간화된 상황 속에서 그대로 인간이고자 하는 인간들의 비명, 그것이 굴락(소련 강제수용소) 소설 『숨 쉬는 그네』의 탄생이다. 뮐러는 책들의 제목을 아주 은밀한 뜻을 지닌 비밀스러운 것으로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제목들에 루마니아 격언을 사용하거나 외마디 같은 짧은 단어를 쓴다. 1986년에 발표한 단편집 『인간은 지상의 위대한 꿩이다』가 그 예다. 격언 속엔 알레고리가 있다. 루마니아에서 꿩은 잘 걷지도 날지도 못하고 대항도 방어도 서툰, 즉 자기 생을 위해 충분히 자라지 못한 패배자를 상징한다.

라이프치히(독일)=강유일 객원교수
정리=정재숙 기자

※기사 전문은 ‘월간중앙’ 12월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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