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 마크] 1인매출 연 1조-비자코리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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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 옆의 동양화학 빌딩 19층에 자리잡은 비자 코리아는 70여 평의 사무실에 17명의 직원이 전부다. 아침 미팅 때면 각자 뽑아온 커피를 들고 조그마한 회의실에 둘러앉는다.

가족적인 분위기다. 그러나 지난해 이 회사가 올린 매출은 무려 25조원. 직원 1인당 1조5천억원 이상의 매출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적은 인원으로 높은 생산성을 올리는 비결은 바로 아웃소싱에 있다.

비자 코리아에는 경리나 총무.인사를 담당하는 직원이 없다. 핵심 업무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웃소싱하기 때문이다.

총무.회계.홍보.법률자문은 물론이고 시장조사도 다른 전문회사 들에게 맡긴다. 이 회사의 김영종(金榮鐘)사장은 "우리 회사만이 제공할 수 있는, 독특하면서 고부가가치인 신용카드 업무에 모든 힘을 집중하고, 그 외는 철저히 아웃소싱 한다는 게 비자 코리아의 원칙" 이라며 "일반회사라면 적어도 1백30명 이상의 인원이 필요했을 것" 이라고 말했다.

비자 코리아의 직원들은 월급도 회사가 아니라 안진회계법인에서 받는다. 따로 사내에 담당직원을 두지 않고 안진회계법인에 회계와 총무업무를 맡겼기 때문이다.

회사업무와 관련된 영수증도 모두 안진에 넘긴다. 이 때문에 이 회사에서는 비자금 조성이나 금융사고는 상상할 수 없다. 비자 코리아는 회계 투명성을 한층 강화하기 위해 5년에 한 번씩은 반드시 회계법인을 바꾼다.

메리트-버슨 마스텔러는 비자 코리아가 홍보업무를 맡긴 아웃소싱 업체. 지난해 12월 비자 인터내셔날의 아시아.태평양 사장인 데니스 고긴씨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각종 의전행사와 이벤트를 이 회사에 맡겨 매끄럽게 끝냈다.

메리트-버슨 마스텔러도 복잡한 문제들은 다시 2차 아웃 소싱으로 해결했다. 행사장의 무대조명은 조명 전문업체에게, 테이블 세팅은 테이블 세팅 전문업체에게, 팸플릿 작성은 인쇄 전문업체에게 각각 맡겼다.

행사담당자였던 메리트-버슨 마스텔러의 김선미과장은 "'비자 코리아가 주요 고객이어서 신경이 많이 쓰였다" 며 "행사 한 달 전부터 밤을 새워가며'몇 차례나 행사기획서를 수정한 뒤에야 겨우 승인을 받았다" 고 말했다.

비자 코리아의 권영욱(權永昱)이사는 "아웃소싱을 하면 전문업체들 간의 경쟁 덕분에 서비스의 질이 높아진다" '며 "사내 직원들도 다른데 신경을 쓰지 않아 업무효율이 향상되는 부수적 효과도 크다" '고 말했다.

그는 "신용카드 업무에 바쁜 직원들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하는 의전행사 등을 도저히 준비할 수 없어 아웃소싱을 택했다" 며 "고긴사장이 방한했을 때 비자 코리아 직원들이 한 일이라곤 사무실에서 악수한 것 뿐" 이라고 전했다.

비자 코리아는 아웃소싱 업체를 선정할 때 반드시 공개입찰을 실시하고, 계약을 맺은 업체가 문제를 일으킬 경우 철저히 법적 책임을 묻는다. 법적 절차를 밟을 때도 김&장 변호사 사무실을 동원하는, 또 다른 아웃소싱을 한다.

비용 면에서도 아웃소싱은 이익이다. 권이사는 "자체적으로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것보다 대략 3분의 1 정도의 비용 밖에 들지 않는다" 고 말했다.

비자 코리아는 아웃소싱 덕분에 외환위기 당시 톡톡히 재미를 봤다. 다른 기업들이 직원을 해고하느라 쩔쩔맬 때 이 회사는 아웃소싱을 줄이는 것으로 비용을 절감했다.

권이사는 "지난 10년간 비자 코리아는 한 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다" 며 "경기순환에 따라 아웃소싱을 늘였다 줄였다 하는 완충효과가 컸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

비자 코리아의 직원들은 대신 영업.상품개발.전산지원이라는 3가지의 핵심사업에 몰두한다. 신용카드 업무가 워낙 전문분야여서 한번 입사하면 이직률이 매우 낮다. 비자 코리아의 경우 지난 10년간 3명이 퇴직했을 뿐이다. 정규직원들은 상당수 억대 연봉을 받는 등 최고의 대우를 해준다.

따라서 직원을 뽑을 때는 신중하게 선발한다. 비자 코리아의 김사장은 "2~3년 앞의 직무까지 꼼꼼히 따지고,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한 명씩 헤드 헌터 업체를 통해 뽑는다" 고 말했다.

비자 코리아의 직원들은 대부분 외국유학을 갔다온 고급인력들이지만, 이 회사 '사무실에는 복사를 하거나 전화를 받는 보조인력이 없다.

직원들은 모두 직접 커피를 타고, 복사나 팩시밀리를 전송한다. 김사장의 승용차 운전기사 조차 인력파견업체에서 아웃소싱했다. 대신 비자 코리아는 직원들의 업무효율을 높이기 위해 복사기와 전화기.팩시밀리 등 사무기기는 항상 가장 빠르고 좋은 최고급품으로 마련해놓고 있다.

이철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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