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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커스] '사회임금'-약자에 대한 배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그에 따른 20대 80의 사회라는 화두 속에서 우리는 21세기를 맞았다.

아닌 게 아니라 연봉제가 도입돼 입사동기간에도 임금이 달라지고, 비정규직이 폭발적으로 증가돼 정규직과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월급은 2배 가까운 차이가 나게 됐다.

그런가 하면 주식시장은 양분화 돼 정보접근성과 자본규모에 따라 명암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전셋값이 오르니 집 가진 사람은 더 부자가 되고, 집 없는 사람은 더 가난해진다.

이렇듯 신자유주의가 그토록 신봉하는 '시장' 이라는 메커니즘을 통해 개인이 얻는 가처분소득은 날로 그 편차가 심해지고 있다.

그 시장구조 속에서 노동조합은 사용자를 상대로 시장임금을 조금이라도 올려보려고 애를 쓰고 있고, 주식을 투자하는 사람들은 경제면을 숙독(熟讀)한다.

그러나 '시장' 이란 비정하여 노조조차 없는 영세사업장의 근로자들, 노조원 자격조차 없는 비정규직이나 일용근로자들은 시장임금을 올리려는 노력에서조차 소외되고 있고, 정보화에 뒤떨어진 촌부들은 아무리 증시(證市)시황판을 들여다봐도 종잣돈을 날리기 십상이다.

시장임금을 높이려고 애를 쓰는 이유는 뭔가. 그것으로 가족이 먹고 살고, 교육시키고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서다. 사회적으로 본다면 노동력이 재생산돼 내일 또 다시 건강하게 일을 하기 위한 비용을 지출하기 위해서다.

노동력이 재생산되는 비용이란 큰 변화가 없을 터인데 이렇듯 시장임금이 마냥 출렁이게 되면 사회노동력 수급도 불안정해지고, 사회불안이 늘어날 것은 뻔한 이치다.

그렇다고 하여 자본주의사회에서 최저임금을 규정하는 외에 시장임금에 직접 개입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은 자연 사회임금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한다.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비용 중의 일부 예를 들어 건강.교육.주거.직업훈련 등을 사회적으로 부담하게 되면 근로자는 그만큼 사회임금을 받는 것이 돼 가처분소득이 늘어나고, 시장임금의 출렁거림에도 탈락되지 않을 안전판을 갖게 되는 것이다.

20세기를 마감하면서 민주노총에서는 그간 사회적으로 소외된 실업노동자와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문제에 소홀했던 점을 반성하고, 시장임금을 위한 단협운동에서 나아가 사회임금을 높이기 위한 사회연대운동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가히 21세기형 노동운동의 시작이라 할 만하다.

사실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남기기 위한 생산현장에서 모든 먹고사는 문제가 다뤄지는 것은 한계가 있다. 사회통합을 위해 소득을 재분배하는 현장에서 먹고 사는 문제의 많은 부분이 다뤄지게 되면, 그만큼 산업현장에서의 노사관계 형성에도 긍정적일 것이다.

사회임금 부문으로 중심축이 이동하게 되면 우선 사회적 재원을 옹골차게 마련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소득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세금이 매겨져야 하며, 모든 소득을 종합해 누진적으로 과세하는 것이 그 어느 부문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통용되는 단순하고 선명한 과세체계가 시급히 확립돼야 한다.

'능력에 따른 부담' 원칙에 따라 직접세 비율을 현재의 9%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수준인 26%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저소득층의 가처분 소득이 간접세 부담으로 인해 줄어든 만큼 다시 사회임금으로 메워주는 것은 절차낭비며, 간접세 비율을 그만큼 낮추면 되는 것이다.

시장임금에서 사회임금으로 관심이 변화하는 것은 그만큼 사회연대가 발전하는 것이고 나보다 더 약자를 배려하는 관용이 우리에게도 생겨난다는 좋은 징조라고 믿고 싶다.

박주현 변호사

◇ 필자약력〓85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88년부터 변호사를 하면서 사회권 운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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