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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화 부스 활용한 ‘전기자동차 충전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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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KT가 전기자동차와 전자책(e북) 관련 사업을 벌인다. 통신사업 외길을 걸어온 대기업이 엉뚱한 데 눈을 돌리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경영진은 믿는 구석이 있다는 표정이다. 다름 아니라 3만8000여 직원이 인터넷상에서 머리를 맞대고 보완·수정을 거친 ‘집단지성’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충전 사업은 GS칼텍스와, e북 콘텐트 유통사업은 교보문고와 손잡고 사업화 단계에까지 왔다.

KT가 새로운 의사결정 실험을 통해 기업문화를 쇄신하려고 한다. 오랜 공기업 체질인 상의하달이 아니라 밑에서 논의된 내용을 위에서 수렴하는 ‘바텀-업’ 의사소통문화가 번지고 있는 것. 이동통신 자회사 KTF와의 합병법인이 출범하던 6월 개설된 사내 의견수렴 사이트 ‘KT 아이디어 위키(Wiki)’가 그 통로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에서 이름을 땄다. 최두환 신사업 부문 사장은 “회사든 직원이든 어떤 사업주제를 던지면 구성원이 자신의 생각을 댓글로 달고, 현답(賢答)을 찾아가는 ‘열린 경영’”이라고 설명했다. 이석채 회장이 1월 취임하면서 “아이디어는 기업의 핵심 자산이다. 24시간 열린공간인 인터넷에서 직원이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다듬어 사업화까지 추진하자”고 강조한 바 있다. 자유 토론과 아이디어가 난무하는 ‘브레인스토밍의 장(場)’을 통해 신규 아이템을 발굴하는 IBM의 ‘이노베이션 잼(Innovation Jam)’이나 델의 ‘아이디어스톰(ideastorm) 등을 참고했다.

이 사이트 출범 후 넉 달간 올라온 제안이 1만5000여 건, 조회 53만여 건, 댓글 13만여 건에 달했다. 윤경림 서비스개발실장은 “직원의 제안이 공론을 통해 회사 정책으로 채택되거나 자연스레 자취를 감추면서 경영진에서 말단 직원에 이르기까지 신규 사업의 판정기준에 관한 공통분모를 찾아갔다”고 전했다. 미래 먹을거리로 모은 제안 중 10여 가지는 사업화 목전에 와 있다. 전기자동차 충전관리 사업은 정부의 녹색성장 정책과 자동차 업계의 친환경차 개발 추세를 반영한 것이다. 이 제안에 대해 한 직원은 ‘KT의 인프라(기술·시설 등)를 활용하면 정보기술(IT)과 자동차의 융합 사업은 유망하다’는 긍정의 댓글을 달았다. 다른 직원은 ‘한국전력보다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 KT 혼자보다는 관련 업체와의 컨소시엄 형태가 좋을 것’이라는 보완 의견을 내놨다. 그러자 ‘전기자동차 시대가 되면 주유소 못지않게 충전소가 필요한데, 전국의 KT 지사나 공중전화 부스 등을 활용하면 시너지가 클 것’이라는 찬성 댓글이 또 떴다. e북 콘텐트 유통 사업은 ‘미국 아마존의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우리 통신망을 활용하면 승산이 크다’ 는 식의 찬성 의견이 이어졌다.

KT는 ‘아이디어 위키’에 대한 임직원 반응이 기대 이상으로 크자 3억5000만원을 들여 첨단 기능이 추가된 사이트를 연말까지 구축하기로 했다.

새 사이트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블로그 서비스 등으로 집이나 길거리에서도 유·무선 인터넷을 통해 의견수렴을 할 수 있다. 아이디어에 가격을 매겨 거래하는 가치평가 기능까지 담는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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