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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이야기] 수륙양용차의 유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007영화를 보다 보면 물위에서는 초고속 보트로 달리다 땅 위로 올라오면 바퀴가 튀어나오며 스포츠카로 변신하는 수륙양용차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최근 개봉한 '언리미티드' 에서도 비슷한 특수 기계가 나온다. 비록 이번엔 바퀴없이 특수 강판으로 만들어진 밑바닥을 도로 위에 통통 튀기며 질주하는 초고속 수륙양용보트지만 말이다.

세계 최초로 수륙양용차가 등장한 것은 1588년 이탈리아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였다. 젊은 목수 아고스티노 라벨리는 당시 총독의 딸 네디아를 위해 바퀴가 달린 배 모양의 나무 수레를 만들었다. 라벨리는 이 수레에 팔랑개비 모양의 물갈퀴가 달린 바퀴를 양쪽에 하나씩 추가, 물 위에서도 저어 갈 수 있도록 설계했다. 자동차가 발명되기 수 백년 전이었던 이때는 엔진 대신 하인이 수레 안에서 바퀴를 돌려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엔진이 달린 최초의 수륙양용차를 만든 것은 1805년 미국 필라델피아의 올리버 에반스에 의해서였다. 이 농기구 기술자는 배 모양을 한 증기엔진 자동차의 뒤쪽에 스크류를 단 뒤 이것을 돌려 강을 건너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수륙양용차를 본격적으로 내놓은 사람은 아돌프 히틀러였다. 2차대전이 시작되자 히틀러는 독일의 국민차 폴크스바겐 비틀을 수륙양용차로 개조 늪이 많은 유럽 북부 전선에 투입할 것을 지시했다. 비틀은 엔진이 애당초 뒤쪽에 달려 있어 스크루를 다는데 용이했다. 이 수륙양용차에는 쉬빔바겐(독일어로 '수영하는 차' 라는 뜻)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쉬빔바겐은 2차대전이 끝난 후 독일의 자동차 메이커였던 NSU가 민간용으로 개조, 1950년 영국과 프랑스간의 도버해협을 건너는데 도전한다. 첫 시도에서 도착 항구를 몇 ㎞ 남겨두고 연료가 떨어져 실패했으나 재도전에선 성공했다. 이 차는 '암피카' 라는 이름으로 주문 생산돼 최초의 시판용 수륙양용차로 기록됐다.

한편 1980년 미국 샌디에이고의 하워드 싱거는 이 암피카로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태평양의 카타리나섬까지의 42㎞를 5시간30분만에 건너 수륙양용차 최장거리 '항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전영선 <한국자동차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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