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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나도록 웃다 보면 통증·스트레스가 확 날아가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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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호 22면

누가 웃음치료 강사고 누가 말기 암환자 수강생일까. 이임선(왼쪽) 간호사와 정근숙씨의 환한 미소엔 진심이 담겨 있다. 최정동 기자

“어머, 오늘은 화장까지 곱게 하시고 오셨네요. 호호호호.”
“흐흐, 가발까지 신경 써서 쓰고 왔어요. 이거 100만원짜리 가발이야. 하하하. 친구 좀 만나고 왔거든요.”말끝마다 웃음이 터진다. 낙엽 떨어지는 것만 봐도 깔깔댄다는 여학생들 같다. 일주일에 한번씩 서울대병원 웃음치료교실에서 만나는 그들은 항상 이런 식이다.

웃음이 명약 1 서울대병원 웃음치료교실 가보니

한때 우울증까지 앓았던 40대의 웃음치료 간호사와 “임종 준비를 하라”는 선고까지 받았던 50대의 암환자. 3일 오후 인터뷰를 위해 만났을 때도 그들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간단한 웃음운동 동작을 보여 달라고 청하자 그들은 서슴없이 음악에 맞춰 지렁이처럼 몸을 좌우, 위아래로 흔든다. 서로 손뼉 치거나 간지럼 태우듯 서로의 몸을 마사지해주며 쉴 새 없이 웃어댔다. 당황한 사진기자가 멈칫하며 셔터를 못 누를 정도다.

그들의 웃음소리와 표정엔 결코 꾸밈이 없었다. ‘국내 최초의 웃음치료 간호사’로 통하는 이임선(45) 간호사는 “정말 유치해 보이죠?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다들 어렸을 땐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행동에 웃었잖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얼굴 근육도 굳고 웬만한 자극에도 둔해지면서 쉽게 웃는 법을 잊어버린 거예요. 자꾸 웃는 연습을 하다 보면 다시 아주 유치해 보이는 일에도 자연스럽게 웃게 되죠”하고 말했다. 실컷 온몸으로 웃고 난 그들의 얼굴엔 땀까지 흐르고 있었다.

정근숙(53)씨는 지난해 4월 폐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이미 간까지 전이돼 수술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담배나 술을 전혀 하지 않았던 그에겐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의사는 길어야 1년 정도 살 거라고 했다. 다행히 항암치료의 효과가 좋았다. 가까스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던 그해 8월 정씨는 인터넷을 통해 웃음치료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마침 강남구청에서 무료로 하는 웃음치료교실이 있었다. 그곳을 처음 찾았을 땐 그도 억지로 웃는 게 어색했다고 한다. “그런데 두세 번 가니까 터지더라고요, 웃음보가.”

웃음에 맛을 들인 정씨는 지난해 12월 서울대병원의 웃음치료교실을 찾았다. 이 간호사가 2005년 유방암 환자 8명을 대상으로 시작한 곳이다. 매주 금요일에서 최근엔 화요일로 시간대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인기다.정씨는 “여기서 한 시간 동안 한바탕 웃고 가면 한 주가 개운하다”고 했다. “올 2월엔 암이 뼈까지 전이됐다는 얘길 들었어요. 그런데 더 신기한 건 통증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거예요. 무엇보다 웃음치료 효과가 큰 것 같아요.” 이 간호사는 “웃을 때 나오는 엔도르핀이나 엔케팔린 등의 호르몬은 모르핀보다 진통효과가 200~300배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설명했다.

간경화가 간암으로 진행돼 절제수술을 받았던 박화일(70)씨도 웃음치료교실 모범생이다. 여성에 비해 웃음에 인색하게 살아온 남성들은 웃음치료교실에 나오는 이도 적은 편이다. 박씨는 “2005년 간암 수술을 받고 난 뒤 이 간호사님의 ‘웃음치료약’ 덕분에 예정보다 사흘이나 일찍 퇴원을 하게 되면서 효과를 느끼고 참여하기 시작했다”며 “잘 웃으니까 먹고 싶은 거 다 먹으면서도 즐겁게 치료받을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간호사도 처음엔 ‘환자’로서 웃음을 배웠다. “교통사고를 당한 뒤 그 후유증으로 늘 찡그린 얼굴을 하고 살았어요. 가벼운 우울증까지 앓았죠. 그러다가 5년 전 우연히 2박3일간의 웃음치료교실에 참가하게 됐어요. 의식적으로 웃기 시작하면서 인상이 달라지고 성격도 달라지더라고요.”

이 간호사는 자신이 경험한 효과를 환자들과 나눠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민간단체들이 발급하는 웃음치료사 자격증을 따는 것으로 모자라 가정의학과나 정신과 등 주변 의료진에 자문해 다양한 질병과 환자들의 특성에 맞는 체계적인 기법을 스스로 개발했다.

이들은 집에서도 수시로 크게 웃는다. 혼자 거울을 보면서도 웃고, 잠자려고 누워서도 웃는다. 매일 등산을 다니는 정씨의 경우 산을 오르다 아무도 없을 때도 큰 소리로 웃는다고 했다. “그러다가 누가 지나가면 얼른 휴대전화를 귀에 대요. 통화하면서 웃은 척하는 거죠.”

이 간호사는 “웃으면 침이 많이 고여 소화도 잘 되고 혈액 순환이 잘 돼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도 좋다”며 “노인들에겐 특히 좋은 보약인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웃음치료를 만병통치약으로 생각하는 건 곤란하다”며 “암이나 우울증·치매 등 이미 질환이 있다면 정상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웃음운동은 그 치료효과를 극대화시켜 주는 보조적인 방법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비만으로 고민하던 이주희(상인천여중 3년)양 모녀는 웃음으로 다이어트 효과를 톡톡히 본 경우다. 주희양의 학교에서 지난해 2학기에 학생 비만관리를 위해 도입한 웃음치료 프로그램이 계기가 됐다. 매일 점심시간과 5교시 수업 사이 5분간, 방송을 통해 보건교사의 지도에 따라 선생님과 학생들이 간단한 율동과 게임을 하며 실컷 웃게 한 것이다. 주희양은 “다이어트를 위해선 물도 많이 마셔야 한다더라”며 생수병을 들고 다녔다.

그러나 “물을 너무 많이 마셔 토할 것 같다”고 불평을 하던 주희양이 웃음치료 프로그램을 시작한 뒤 태도가 바뀌었다. 신기하게도 하루 2L의 물을 마시는 일이 거뜬해진 것이다. 주희양은 집에서도 선생님이 가르쳐준 대로 혼자 틈나는 대로 땀이 날 정도로 크게 웃었다. “실컷 웃고 나면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인지 전에는 살 때문에 적게 먹거나 운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짜증부터 났는데, 그런 게 없어지더라고요.”

정말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한번 살이 빠지자 기분이 좋아 더 신나게 웃었다. 지난 4월엔 웃음요법을 보다 집중적으로 가르쳐주는 방과후 학교의 ‘건강 지킴이’ 반에도 들어갔다. 한 시간씩 매주 두세 번 실컷 웃고 왔다. 살이 빠지니 외모에 자신감도 생겼다. 학생회장 선거에서도 좀 더 당당하게 친구들 앞에 나설 수 있었다. 그렇게 5개월 동안 주희양의 몸무게는 10㎏이 줄었다.

주희양의 어머니 고영남(47·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씨도 지난 4월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시간 동안 진행된 웃음치료 연수를 받았다. 맞벌이 주부였던 고씨도 70㎏을 넘어선 몸무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참이었다. 아침 화장을 할 때나 혼자 집에 있을 때 전신 거울 앞에서 30분씩 박수를 쳐가며 크게 웃어댔다. “남이 봤다면 아마 미쳤느냐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웃음이 웃음을 낳더라고요. 일 때문에 기분이 푹 가라앉아 있다가도 일부러 막 웃다 보면 전에 웃겼던 일들이 연이어 생각이 나요. 그러면 스트레스가 싹 풀리면서 일에도 자신감이 생기고 식사 조절도 쉬워져요.” 역시 10㎏을 뺐다는 고씨는 이제 확실한 웃음 전도사가 됐다.

이 프로그램을 주도했던 상인천여중의 서혜영 보건교사는 “요즘 청소년들은 우울증이나 비만 문제가 제법 심각하다”며 “웃음은 스트레스 등 그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뿐 아니라 외모나 태도에도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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