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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선 옛동지…하영옥·김영환씨 법정서 설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북한과 연계해 통일 운동을 하는데 왜 끝까지 목숨을 걸지 않았나. " "(처음에 몰랐지만 나중에)북의 실상을 알게 돼 김정일'(金正日)'정권 타도에 나서게 됐다. "

7일 오전 10시 서울지법 311호 법정. 1980년대부터 주사파 학생운동권의 '대부(代父)' 로 끈끈한 이론적 동지였던 하영옥(河永沃.36).김영환(金永煥.37)씨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설전이 벌어졌다.

河씨는 구속 피고인. 같은 사건의 '주범' 격이지만 사상 전향을 선언하고 풀려난 金씨는 그의 유죄를 입증해야 하는 '증인' 의 신분으로 만난 것이다.

재판장인 서울지법 형사합의23부 김대휘(金大彙)부장판사는 두 사람의 특수한 관계를 감안, 이례적으로 河씨에게 직접 심문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국정원 회유를 받고 동지들 이름을 진술한 게 아닌가. " (河)

"나와 직접 관련된 부분만 진술했다. " (金)

"북한정권 타도는 민족.민주 혁명을 하겠다던 과거 신념과 배치되는 것 아닌가. " (河)

"이젠 생각이 변했다. 북한은 우리보다 몇십배, 몇백배 더 반민주적이다. 이젠 혁명하던 정신으로 더 반민주적인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 (金)

두 사람은 20여분간 서로 한치의 양보없는 치열한 논리공방을 벌였다.

河씨가 "목숨을 걸고 지키자던 '당헌' 을 어겼다" 며 金씨를 '변절자' 로 몰자 金씨는 "과거에도 민족을 앞세웠을 뿐 북한정권을 수호한 적이 없다" 며 맞섰다.

1989년 '반제청년동맹' 을 결성, 반미(反美)주의 운동을 펼쳤던 河씨와 '강철서신' 시리즈로 주사파 이론을 전파시킨 金씨는 서울대 법대 82학번 동기생. 두 사람은 1992년 김일성(金日成)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결성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중앙위원으로 활동하며 사상적 동지로 지냈'으나 1995년부터 이념적 갈등으로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해 여름 金씨의 자수로 서울 신림동 고시원에서 사법시험 준비를 하던 河씨가 국정원에 검거됐다.

金씨 역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으나 지난해 10월 검찰의 '공소보류' 조치로 풀려났다.

한편 이날 '공판에서 '金씨는 국정원에서 군대식 기합을 받는 등 가혹행위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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