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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획취재] 불량 레미콘 유통 실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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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건축물 안전사고 뒤에는 불량 레미콘이 숨어 있었다. 실태를 알아본다.

◇ 불량 제품 양산〓불량 레미콘은 원료 선택에서부터도 시작된다.

경기도 P시의 K사는 규격 모래 대신 논에서 퍼온 토사를 대량 사용했다. 이런 토사는 진흙이 많아 시멘트와 섞이지 않아 강도를 떨어뜨린다.

A사의 트럭 기사는 "레미콘을 반죽하는 사일로 표면에 시멘트가 붙어 배출량이 줄어들자 석탄재를 집어넣어 양을 맞추는 회사도 있다" 고 말했다.

이런 레미콘은 현장에서 하는 슬럼프 실험에서 거의 다 퇴짜를 맞게 된다. 슬럼프 실험은 지름 10㎝.길이 20㎝의 원통에 레미콘을 넣어 무너지는 정도를 알아보는 실험. 어느 정도 무너지느냐로 불량을 결정한다.

제 원료를 사용한 정품도 한국공업표준(KS)규정 시간 내에 타설을 못하게 되면 불량품이 된다. 현장과 레미콘 회사의 거리가 멀거나, 교통난이 심하거나, 현장사정 때문에 타설을 기다리다가 시간을 넘길 경우 굳어지게 돼 불량품이 된다.

레미콘은 사일로에서 나온 지 1시간30분 내에 처리하도록 KS 규격에 정해져 있지만 지켜지지 않는다.

"트럭에 실린 뒤 4~5시간이 지난 레미콘도 흔히 사용된다" 고 K레미콘사의 트럭 기사 金모씨는 말했다.

취재팀이 확보한 A사 관련 서류에 따르면 지난해 2월 22일 오후 7시50분에 만든 레미콘이 반품되자 회사측은 규정시간을 2시간이나 넘긴 뒤 이를 H건설 개봉동 현장으로 그대로 공급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 소규모 공사장 공급〓 "레미콘 한차가 반품되면 업체는 차당 42만원(㎥당 7만원, 레미콘 트럭 한대 용량은 6㎥)의 손해를 본다.

게다가 폐레미콘 처리에도 시간과 비용이 상당히 든다" 고 S사 兪모 지사장은 말한다. 때문에 레미콘 업주들은 불량 레미콘을 어떻게라도 '처리' 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주된 수법은 대형 건설업체 공사현장에서 반품된 레미콘을 상대적으로 검사가 허술한 소규모 공사장에 타설하는 것. 취재팀이 확보한 K사의 내부자료도 불량 레미콘 재출하 현장 대부분이 소규모 건설사나 개인업자 공사장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비밀장부에 따르면 일부 제품은 지하철 공사장과 교량 건설현장 등 공공시설 공사현장에까지 흘러들어가기도 했다.

◇ 서류 조작〓폐기 대상 제품은 재사용 자체가 불법이어서 서류들도 조작되거나 비밀장부가 따로 만들어진다. 취재팀이 확보한 K사의 대외비 장부도 바로 비밀장부다.

A사는 지난해 3월 불량 레미콘을 재사용하면서 새 제품인 것처럼 제조시간을 속인 차량 운행증을 만들었다.

S사는 지난해 1월 11일 타설한 레미콘의 강도 실험에서 표본 레미콘 3종의 압축강도가 1백69㎏.1백78㎏.1백73㎏으로 각각 나왔으나 제품검사서에는 2백50㎏ 이상으로 허위 기재하는 수법도 동원했다. 그러나 이 회사 관계자는 "14일 검사 수치를 28일차 검사장부에 기록했을 뿐" 이라고 주장했다.

기획취재팀〓안성규.강찬수.왕희수.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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