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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아라리난장] 김치수 이대 교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김주영씨의 '아라리 난장' 이 막을 내렸다.

지난 2년간 이 연재소설이 나의 관심을 끌며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읽게 한 것은 이미 '객주' 로 우리의 전통적인 보부상들의 삶의 애환을 탁월한 지식과 뛰어난 필치로 그림으로써 문학적인 성공뿐만 아니라 대중적 인기도 누린 바 있는 김씨가 현대의 장꾼들의 삶에 대한 새로운 형상화에 이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국가경제가 파탄에 이른 시기에 화이트칼라 출신의 주인공이 거칠고 무뚝둑한 트럭 운전사를 만나서 동업의 길로 들어서는 과정은 너무나 아슬아슬해서 한쪽의 완력에 다른 한쪽의 합리가 견디지 못할 것 같은 위기를 느끼게 했다.

월급장이로 반평생을 살아온 한철규라는 주인공은 실직과 이혼이라는 청천벽력의 고통을 겪으면서도 '장돌뱅이'들을 만나 그들의 삶에 조금씩 적응해가는 과정을 보여 줌으로써 변신의 길을 걷고 있다.

무식한 듯하면서도 그 나름의 의리와 원칙을 갖고 사는 떠돌이 장꾼들을 만나 그들과 부딪치며 동고동락하고 하나하나 설득시켜서 동업자로 끌어들인다.

명태나 오징어와 같은 동해안의 특산물을 다른 지방으로 옮겨가며 장사를 하는 그들 일행의 삶은 한사람의 월급쟁이 실직자가 장돌뱅이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감수성 많았던 소년 시절의 대부분을 저잣거리에서 보냈다고 하는 작가는 이 작품에서 전국 각지의 유명한 특산품이 있는 장터를 생생하게 우리에게 보여 주면서 장꾼들이 물건을 팔기 위해 부르는 구수한 장타령들을 복원해 놓고 있다.

또 그들 상호간에 주고 받는 말들을 입담 좋은 장꾼들의 입을 통해서 전달하고 있다.

'아라리 난장' 에서는 한철규와 같은 서울 출신으로부터 박봉환이 같은 경상도 출신, 변창호와 같은 강원도 출신, 손달근과 같은 충청도 출신, 방극섭과 같은 전라도 출신 그리고 중국 땅에서 죽어간 태호 같은 고아 출신 등 출신 지역이나 신분을 초월한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만나서 동행이 되기도 하고 이해타산에 의해 헤어지기도 한다.

때로는 의기투합하기도 하고 때로는 갈등과 반목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그들의 온갖 고통과 희열을 함께 나누며 공동체를 이루어가는 모습은 어쩌면 IMF 관리 체제 아래에서 우리가 꿈꾸었던 삶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작가가 의도적으로 각 지역 출신들을 만나게 했음에 틀림없겠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각 지역의 사투리는 이 작품의 현장감을 살려 주고 있고 그들이 주문진으로부터 정선을 거처 안동으로 이동하고 고흥을 거쳐 다시 안면도로 무대를 바꾸면서 그 지역의 특산물과 인심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IMF 체제를 서민들 내부에서 독자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가는 이 작품의 결말에서 "텔레비전도 없고, 전화도 없고, 전기도 안들어 오고, 신문도 안들어오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이 앞서네요" 라는 말에 "그것들이 없는 대신 구룡덕봉 산자락의 절경이며 안개와 짐승들과 새소리까지 모두 내꺼가 되었고, 철마다 다투어 피는 꽃이며 열매를 모두 가지게 되었지 않았습니까" 라고 쓰고 있다.

이러한 결말은 작가의 낭만적 이상주의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읽어야 할 것은 작가의 자연 친화적인 생태주의적 입장이다.

그것은 IMF 관리체제를 진정으로 벗어나는 길이 생태문제의 해결에 있다는, 그리고 새로운 세기의 화두가 환경문제에 있다는 작가의 인식을 보게 한다.

김치수 <문학평론가.이화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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