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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부즈맨칼럼] 경제기사 흩어져 불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박정희 시스템' 을 통해 서구사회보다 10배의 속도로 근대화를 성취함으로써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던 우리 사회는 선진국 진입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요긴하게 써야 했던 1988년부터의 10년간을 한풀이와 해외여행으로 낭비했다.

그 결과 우리 나라는 6.25 이후 최대의 국난이라는 IMF 경제위기를 겪고 새 밀레니엄을 맞이하게 됐다.

지금 우리 나라는 1백년전 조선왕조가 열강의 무력 앞에 무기력하게 노출됐던 것 같이 서구문명의 과학.정보기술은 물론 경영.금융기술 등 글로벌 스탠더드의 전면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와 함께 1950년대부터 시작된 지식사회로의 대전환이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고 있는 시기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19세기말의 준비 없는 개국이 빚어낸 역사적 교훈을 되새기면서 IMF 경제위기를 초래한 경제정책과 구조, 그리고 사회체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 21세기 선진국 진입을 위한 새로운 국가경영의 구조와 시스템을 재설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업의 가치중심은 규모로부터 지식.정보와 창의력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초과수익의 원천도 제조과정의 전.후방으로 다양하게 바뀌고 있다.

따라서 기업정책의 바람직한 방향도 대기업에 대한 일방적인 매도(罵倒)가 아니라 대기업-중소기업-벤처기업간의 적절한 역할분담을 통한 윈-윈-윈의 상생(相生)구조를 만드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우리 경제의 권력이동을 코스닥시장의 주가와 시가총액을 통해 실증해 보이고 있는 벤처기업들은 앞으로 수많은 실패에 직면할 것이고, 이에 따른 사회적 물의도 적지않게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이 새 밀레니엄 시대 우리 경제의 견인차가 될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앙일보가 벤처기업과 전자상거래 등의 중요성과 함께 문제점을 계속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옳은 방향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에 덧붙여 우리 나라가 직면한 경제구조와 운용원리의 근본적인 변화 방향에 대한 권위 있는 성찰과 전망을 제시하려는 노력이 보다 요망된다.

그리고 경제섹션이 증면됐음에도 불구하고 경제기사가 산재해 있는 것이 독자의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이헌재(李憲宰)금융감독위원장의 12월 27일자 월요 인터뷰 기사나 사기 인터넷 상거래에 대한 기획취재기사가 그렇다.

이같이 경제 정보량이 풍부한 기사는 12월 23일자 워크아웃 기획취재기사의 경우와 같이 메인 섹션에선 뉴스부분을 게재하고 보다 자세한 내용은 경제섹션에서 다루는 것이 좋아 보인다.

경제섹션에 국가.기업.개인과 관련된 모든 경제기사가 집중된다면 경제전문지와의 경쟁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최근의 경제섹션에서는 KDI의 성장요인 분석과 장기성장률 전망보고서(12월 24일), 한국경제연구소의 세미나(12월 29일)관련기사 등이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기사가 정부나 업계 관련자들이 제기하는 주장의 단순한 전달이나 요약에 그치지 않고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역풍을 맞고 있는 경제정책의 운용에 대한 본격적인 비판과 토론의 장을 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즉 통화량.금리.환율.재정적자.구조조정 등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긴요한 시점이라는 얘기다.

주지하다시피 선거 때만 되면 우리 경제가 갖가지 태풍을 맞는 좋지못한 선례가 이번만은 재현돼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달기사의 양이 분석기사나 취재기사에 비해 많다는 점이 여전히 눈에 거슬리는 한편 경제사설이나 경제칼럼의 시도가 아직 본격화되고 있지 않다는 점도 아쉬웠다.

반면 12월 24일자 Money & Life의 전 섹션과 29일자 45, 46면과 같이 경제 전반에 걸친 정보량이 풍부한 기사가 계속 늘어나고 있었음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뉴밀레니엄시대 우리 나라의 경영환경은 벤처기업의 약진, 재벌의 해체, 기관투자가들의 영향력 증대, 우수인력의 대기업 이탈, M&A의 일상화, 대부분 산업에서의 글로벌 네트워크화, 국제금융자본의 영향력 증대 등 그야말로 대변화에 임박해 있다.

어쩌면 지금부터 5년 내에 21세기 재계의 판도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복잡성 경영원리의 도입, 사업구조의 근본적인 재편성, 소유자와 경영자의 역할정립, 기업 생태계의 형성 등과 같은 신경영 패러다임의 과제를 신속하고 강력하게 실천하는 기업과 경영자만이 새 밀레니엄 시대에도 살아남을 것이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김일섭 한국회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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