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융합과 상생의 남북관계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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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새 천년을 맞으면서 온겨레가 그 어느 때보다 남북관계 개선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반세기를 넘긴 반목과 대결의 상극(相剋)시대가 이제는 마감돼야 한다는 절절한 바람 때문이다.

북한 노동신문의 신년 사설은 한해 정책노선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다.

노동신문.조선인민군.청년전위 3개지 공동사설은 지난해에 이어 '강성대국 깃발' 아래 경제회생에 주력하겠다는 의지와 올해를 '통일 전환기' 로 삼겠다는 뜻을 밝혔다.

여전히 고답적인 주장과 언술로 채워져 있지만 일말의 기대감을 낳게 하는 대목도 있음에 유의하고자 한다.

3개지 공동사설이 경제분야의 '실리(實利)' 를 강조하고 21세기 과학기술시대의 추세를 감안해 '과학기술 중시' 를 강성대국 건설의 주요 목표로 내건 사실은 뭔가 달라진 변화의 모습이다.

과감한 경제개혁에는 주저하고 있지만 작으나마 실용주의의 싹을 점차 키워가고 있고 경제회생의 1차목표인 식량배급.산업정상화.생필품 보급뿐 아니라 과학기술입국이라는 장기 비전까지 표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러면서도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불가피하게 요구되는 대외교류 확대는 고의적으로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여전히 대외개방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전체 분위기로는 올해도 체제.정권을 보위하려는 수성(守城)의 입지가 역력하다.

'사상중시' '총대(군사)중시' 아래 군(軍)을 앞세우고 사상의 모기장을 든든히 치는 데 강한 집착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런 자세로는 개인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기술입국은 물론 경제회생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점을 북한 당국은 깨달아야 한다.

김대중 정부는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해 오면서 북한을 붕괴시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임을 이미 여러번 천명했고 지난 2년간 이는 검증되고도 남음이 있다.

따라서 북한은 이제 스스로 설정한 경제회생의 국가의제를 달성하기 위해 대외 경제교류, 특히 남북경협에 더 적극적으로 나와야 한다.

금강산 관광사업에 머물지 않고 여러 분야의 다양한 협력을 위해선 남북 기업인들이 머리를 맞대는 기회를 넓혀야 한다.

또 북한은 이산가족의 한(恨)을 풀어주는 특단의 자세전환을 통해 화해와 관용의 정신을 보여줘야 한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남과 북은 더 이상 분열이 아닌 민족융합(融合)의 시대를 앞당길 수 있다.

우리는 특히 북한이 신년 사설에서 국가보안법 철폐, 국가정보원.통일부 해체 등 상투적인 대남 비방을 빠뜨린 점에 주목하면서 당국간 대화에 적극 호응해 오기를 촉구한다.

또한 대미.대일관계 개선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격렬한 대미 비난을 자제한 것과 관련, 북한이 국제사회에 더욱 적극적으로 진출하기를 바란다.

새 천년 새해의 남북 공통과제는 융합과 상생(相生)에 있다고 본다.

올해를 남북 당국이 겨레의 공동번영과 평화공존이라는 해묵은 숙제를 풀어가는 상생과 대동(大同)의 원년으로 삼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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