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용석의 Wine &] 와인 양조에도 동양 바람이 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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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0월 칠레 와인 몬테스가 누적 판매량 330만 병을 돌파했다. 1997년 수입된 이후 지금까지 2분에 한 병씩 팔려나간 셈이다. 330만 병을 일렬로 세우면 서울~부산 왕복거리다. 무게는 보잉 747 비행기 9대에 해당한다.

87년 세워진 몬테스의 성공 비밀은 양조장에 있다. 양조장 앞엔 인공 호수와 분수로 넓은 물길이 조성돼 있는데, 원래는 물이 건물에서 밖으로 나가도록 만들 계획이었다. 하지만 풍수전문가의 조언에 따라 물이 밖에서 안으로 흐르도록 바꿨다. 기(氣)가 안으로 모이도록 한 것이다. 사물에도 생명이 있다는 동양사상에 근거해 저장고에선 와인들이 편안히 숙성될 수 있도록 클래식 음악을 틀어 놓는다. 나라식품의 조성춘 상무는 “몬테스에선 동양적인 철학을 중시하고 특히 풍수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며 “최근 칠레에선 와이너리를 세울 때 풍수전문가에게 조언을 얻는 것이 유행”이라고 말했다.

풍수는 포도밭과도 연관이 깊다. 배산임수(背山臨水)는 포도밭의 명당으로 꼽힌다. 프랑스 보르도는 지롱드 강을 중심으로 양쪽의 경사진 언덕에 포도밭들이 늘어서 있다. 라인 강을 중심으로 험준한 비탈에 조성된 독일 포도밭이나, 안데스 산맥과 대서양 사이에 형성된 칠레 포도밭도 마찬가지다. 보르도와인협회 홍보담당인 마리에 에스테브는 “포도밭이 물과 바람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동양의 풍수지리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와인 양조에서도 동양 바람이 거세다. 바이오 다이내믹 경작법이 대표적.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음력에 맞춰 포도를 재배한다. 포도는 껍질에 붙은 효모로만 자연 발효시키며 정제나 여과 과정도 거치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 로마네 콩티, 도멘 르루아 등 최고급 와인이 이 경작법으로 생산된다.

손용석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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