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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의 FUNFUN LIFE] 즐겁게 노래하면 듣는 이도 즐겁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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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면

올해 여름 미국 뉴욕 클럽에서 공연했던 모습이다.

내가 가수로 살아온 지 벌써 10년이나 됐다. 세월, 참 빠르다. 처음엔 브로스라는 프로젝트 그룹(룰라, 디바, 바비 킴, X-LARGE, 에스더, 샤크라)으로 무대에 섰고, 여성 그룹 샤크라로, 지금은 솔로로 계속 노래를 하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가수가 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는 연기에 관심이 있어서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그리고 대학 입학식을 기다리며 청담동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냥 아는 언니가 자리를 비우는 동안만 대신 도와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 레스토랑에 탤런트 이혜영 언니와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이경민 원장님이 식사를 하러 오셨다. 이분들이 홀에서 일하고 있는 내게 “가수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땐 사실 겁이 났었다. 가수를 먼저 하게 된 친구가 있었는데 굉장히 힘들어하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그래서 나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도 그 후에 아르바이트가 끝날 시간이면 프로듀서 이상민 오빠가 계속 오셔서 나를 설득했다. 이 점에 대해선 지금도 감사드린다. ‘나’라는 아이의 매력을 찾아주고 믿고 설득해 주셨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디션도 없이 가수가 됐다. 그때는 ‘내 얼굴이 예뻐서 가수가 되나 보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어쨌든 인도 스타일의 그룹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 이미지에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엔 지금보다 피부가 더 까맣고, 긴 생머리였으니 아마 인도 여자처럼 보였나 보다.

신인 때는 배우고 연습한 대로 무대에서 열심히 했다. 말 그대로 열심히만 말이다. 그랬더니 음악프로에서 1위도 됐다. ‘밤 새워 가며 열심히 하니 1위가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값진 건지 잘 몰랐다. 그리고 무대는 언제든지 내 앞에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나는 비로소 노래를 즐길 줄 알게 됐다. 단지 연습하고 외운 것만이 아니라 내 감정을 표현하고 나를 표출하려고 하게 됐다. 지금은 매일 같은 동작의 춤을 추더라도 무대마다 달라지는 그 느낌을 표현하려고 한다. 이런 걸 연륜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그다지 가창력이 뛰어난 가수가 아니다. 다만 노래를 즐길 줄 아는 가수일 뿐이다. 그리고 나는 어떤 일이든, 일이란 잘하는 사람만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 일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사람도 일을 할 자격이 있다. 가수인 내가 진심으로 즐겁게 부르면 그 노래를 듣는 사람도 즐거워질 거라고 기대하며 부른다. 가끔씩 컨디션이 좋지 않고 만사가 귀찮은 날에도 막상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를 때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신나고 즐겁다. 노래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올 때의 그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나는 정말 내가 가수라는 게 좋다.

그러나 요즘에는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적어졌다. 가수들은 넘쳐나는데 그만큼 설 수 있는 무대가 줄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기 있는 가수나 노래 위주가 되다 보니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내가 음악프로 무대에 설 수 있는 것도 자기 자존심을 돌보지 않고 열심히 하는 매니저들의 노력 덕분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이것도 역시 감사하다.

나는 그래도 무대가 있는 한 노래를 하고 춤을 추고 싶다. 물론 그게 언제까지가 될지는 모르지만 음악을 팔기 위해서, 최고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 노래를 오래도록 들려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누구든 내 노래를 들었을 때 ‘황보 목소리다’ 하고 단번에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잠깐만! 노래를 부르는 건 정말 즐거운 일이랍니다. 내가 노래를 즐기는 방법을 알려드릴게요. 나는 노래방에 놀러왔다고 생각하고 부릅니다. 옛날에는 관객들의 표정을 읽느라 제대로 못 즐겼죠. 웃거나 신나 하는 사람을 보면 더 흥이 나고 자신감이 생겨 더 신나게 불렀고, 간혹 무표정한 사람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주눅들기도 했죠. 그런데 이젠 관객을 잘 안 봅니다. 연습실에서 혼자 필이 꽂혀서 연습하는 것처럼 부르는 게 관건입니다. 부르는 사람이 신나면 보는 사람도 신나한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지 못 부르는지에 신경쓰지 마세요. 그저 마음을 풀어놓고 즐겁게 부르세요. 그러면 노래를 부르는 게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지 알게 될 겁니다.

황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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