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되돌아 본 99 북한] 북한판 새뚝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북한의 올해 국가 아젠다(의제)는 '강성대국 건설' 이었다.

심각한 식량난과 에너지난 해결이 급선무였다.

그런 만큼 북한식 화제의 인물은 단연 '노력영웅' 들이었다.

북한은 올해 '영웅' 6명을 전면에 내세웠다.

노동신문 11월 6일자는 이들을 '시대의 선구자' 로 선정하고 이들을 따라 배우라고 촉구했다.

20년간 산림보호에 힘써 7백10여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이웅찬(54), 첨단기술인 특수합금원판.전기접점재료 등의 기술을 개발한 현영라(55), 13년간 탄광에 근무하면서 높은 실적을 올린 김유봉(42), 북방 산골에서 세벌농사(3모작)의 기적을 창조한 박옥희(57), 중.소형발전소 건설에서 높은 실적을 올린 허용구(41), 세계마라톤을 제패한 마라토너 정성옥(25)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특히 올해는 '정성옥의 해' 였다.

그녀가 8월 29일 스페인 세비야에서 열린 제7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마라톤에서 우승하자 북한 전역이 '정성옥 열풍' 에 휩싸였다.

그녀가 귀국한 날을 임시공휴일로 선포할 정도로 북한 당국은 성대한 귀국행사를 벌였다.

당연히 그녀에게는 북한 최고의 영예인 '공화국영웅' '인민체육인' 칭호가 수여됐다.

북한의 TV방송.우체국 등에는 정선수의 경기장면 재방송 요구와 축하편지 등이 폭주했다고 한다.

북한 당국은 이 열기를 놓치지 않고 '정성옥 선수 따라배우기' 운동으로 몰아갔다.

북한은 11월 '제2천리마선구자대회' 를 연 자리에서 정성옥처럼 각 분야에서 성과를 거둔 '선구자' 를 따라 배워 "경제회생에 떨쳐나서자" 고 촉구했다.

문예분야에서도 영웅을 부각시키는 작품이 주류를 이뤘다.

1백여편의 영화 중 세계적 프로레슬러 역도산과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유도 우승자 계순희 선수를 모델로 한 다부작영화 '민족의 사나이' (12부작)와 '소녀 유술강자' (4부작)등이 인기를 끌었다.

가요계에도 새로운 스타가 떴다.

왕재산경음악단 소속의 염청이 차세대 대중스타로 뜨면서 '휘파람' 의 전혜영 못지 않은 인기를 누렸다.

91년 중국 공연 때 '새타령' 을 불러 관중들을 매료시켰던 염청은 96년 10월 인민배우가 된 이래 올해 주가가 많이 올라 청소년들의 사랑을 받았다.

코미디계에서는 국립희극단의 손원주가 익살스런 연기로 주민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아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올해는 북한이 대미(對美)관계에 주력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따라서 북.미협상의 주역 김계관 외무성 부상도 외부의 관심대상이었다.

그는 대미협상에서 금창리 시설 현장접근 허용, 미사일 발사 잠정중단 등에 합의해주고 반대급부를 얻는 수완을 과시했다.

올해는 또 남북한간에 민간교류가 활발했으며 북측에서 이를 전담한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김용순 위원장과 송호경 부위원장의 활약도 두드러졌다.

송 부위원장은 남북통일농구대회 대표단을 이끌고 서울을 방문해 92년 김달현 부총리 방문 이래 서울을 찾은 첫 고위급인사가 됐다.

한편 서해교전사태 당시의 참패로 오금철 해군사령관이, 또 부정부패혐의로 계응태 공안담당비서가 숙청됐다는 관측이 나돌았으나 연말 현재 여전히 건재한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에서 올해 세상을 떠난 유명인사도 적지 않았다.

'혁명1세대' 로 부주석을 역임한 이종옥과 문예총위원장 백인준이 대표적 인물. 남쪽 출신의 인민배우 문예봉, 영화감독 김영호, 미술가동맹위원장 정영만(61)등도 사망했다.

특히 '30여년간 6백여점의 조선화를 창작한 '정영만은 2백여차례에 걸쳐 김일성 주석.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치하교시' 를 받은 미술가였기 때문에 9월에 유작전람회가 열리기도 했다.

정창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