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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종교도 ‘반쪽’을 찾을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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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목회뿐 아니다. 여성이 목사가 되는 과정도 순탄치 않다. 개신교는 장로교 일부 교단과 감리교 등에서만 여성 목사·여성 장로를 인정한다. 그래서 신학대를 나온 뒤 목사 안수를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교단을 바꾸는 여성도 종종 있다. “여성은 장로 대신 권사가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여성 평신도의 가장 높은 직책인 권사는 교회의 정책 결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다.

가톨릭 성직자도 남성과 여성이 갈린다. 수녀는 사제가 될 수 없다. 그래서 미사를 집전하지 못한다. 바깥 출입을 일절 금한 채 수도원 안에서만 생활하는 봉쇄수녀원에도 출입이 허용되는 남자가 딱 한 명 있다.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다. 사제가 못 되니 가톨릭에선 여성 주교도, 여성 추기경도, 여성 교황도 나올 수가 없는 형편이다.

불교 조계종 승려(약 1만3000명) 중 비구와 비구니 수는 반반이다. 그런데도 절집에는 ‘괴담’이 떠돈다. “비구니는 아무리 수행해도 깨닫지 못한다. 깨달으려면 다음 생에 남자의 몸을 받고 태어나 다시 수행자가 돼야 한다”는 등 근거 없는 속설이다. 이러한 ‘남성 우위’의 배타적 정서가 실제로 절집에 있다.

비구니는 비구에게 삼배(三拜)를 한다. 그러나 비구가 비구니에게 삼배를 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한 비구 스님은 “비구니 큰스님을 뵌 적이 있다. 함께 간 비구 일행 등 주위 분위기 때문에 절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솔직히 내 마음은 삼배를 하고 싶었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그게 절집의 정서다. 총무원의 집행부도, 중앙종회 의원도 거의 대부분이 비구 스님이다.

개신교도, 가톨릭도, 불교도 남녀 차별의 근거를 경전에 둔다. 성경에 등장하는 ‘아담의 갈비뼈’와 ‘이브가 따먹은 선악과’를 거론하며 “남자는 돼, 여자는 안 돼!”라고 말한다. 불교도 붓다가 처음으로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며 일렀던 ‘여덟 가지 계율(비구니는 반드시 비구에게 예를 올리고 비구에게 설법을 들으라는 비구니 팔경법)’을 언급하며 “비구는 돼, 비구니는 안 돼!”라고 말한다.

그런데 시대가 변했다. 남성의 눈으로만 성경과 불경을 풀고, 남성 중심으로만 교단을 지탱하던 시대는 지났다. 이젠 종교도 변할 차례다. 대한성공회에는 여성 사제가 있고 미국성공회에는 여성 대주교가 있다. 원불교에선 여성 교정원장(조계종 총무원장에 해당)도 나왔었다. 지난주 독일에선 개신교협의회장에 처음으로 여성 목사가 뽑혔다. 한쪽 다리로 달릴 건가, 아니면 두 다리로 달릴 건가. 그건 ‘21세기 종교의 경쟁력’과 직결되는 문제다.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