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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류하는 워크아웃] 빚 유예등 '구명조끼'로 겨우 연명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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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워크아웃이 표류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회사를 부실화시킨 기업주나 채권단이 기업의 회생보다는 제몫찾기에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1년반의 시간이 흐른 지금 워크아웃 기업 가운데 절반은 돈만 날리고 실패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 워크아웃 성적표〓상당수 대상기업이 채권단의 거듭된 지원에도 불구하고 회생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방은 주력사업인 건설사의 올 하반기 대구지역 아파트 분양률이 1백%에 가까울 정도로 호황이었던데다 9천억원 가량의 금리감면.출자전환을 받고도 과거 부실 털어내기 등의 문제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종합상사인 동국무역도 원단 등 재고의 헐값 처분에 따른 손실과 영업 부진 때문에 상반기 적자가 7백81억원에 이른다. 동국무역 관계자는 "그나마 대주주가 9백억원 상당의 주식을 내놔 이 정도에 그쳤다" 고 말했다.

의류업체인 신원의 올 상반기 매출액은 2천2백억원에 그쳐 채권단과 함께 설정한 목표의 70% 정도에 불과했다.

S그룹 관계자는 "워크아웃 이후 핵심 인력들이 대거 떠났고 일감이 떨어져 급여부담을 줄이기위해 할 수 없이 쉬는 날도 많다" 고 전했다.

이같은 경영부진 때문에 갑을.고합.동국무역.동아건설.세풍.신호.신원.우방.진도 등 12개 업체들은 2차 채무조정을 요구했거나 진행중이다.

금융기관 관계자는 "채무조정을 해주지 않을 경우 살 수 없는 기업들이 허다하다" 고 말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이런 기업들의 상당수가 ▶품질이나 기술력 문제로 수익성이 낮거나 ▶지나치게 많은 채무 때문에 일부를 깎아줘봤자 이익이 나지 않으며 ▶핵심 인력의 이탈 등으로 경쟁력을 상실해 수익을 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 자구(自求)노력 외면〓기업구조조정위원회에 따르면 전체 워크아웃 기업주들의 사재출연 계획은 4천7백94억원이나 이중 지난 6월까지 이행된 것은 약 절반 수준인 2천4백2억원이다.

그나마 쌍용이 사재출연 목표액(2천1백76억원)을 전액 이행한 것을 빼고 나면 목표의 8.6%에 불과하다.

일부 기업들은 빚더미 속에서도 사업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고합의 경우 당초 매각하기로했던 서울 고합 본사 인근 20개 필지 3천평과 의왕 공장자리 4만8천평에 전문상가.위락시설 등을 세우는 방안을 부동산 컨설팅회사들에게 자문받고 있다.

이에 대해 고합측은 "사업 확장이 아니라 가치를 높여 팔아 빚을 더 갚으려는 생각이었다" 고 해명했다.

고합측은 주채권은행인 한빛은행에 주식을 되팔라는 요구도 했는데, "임직원의 사기진작용으로 스톡옵션제를 실시하기 위해 논의했던 것" 이라고 말했다.

일부 업체들은 워크아웃 세부 계획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기 위해 채권단 관계자들에게 금품을 제공하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워크아웃 기업주들이 자구노력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는 재산을 숨겼다는 의심도 든다" 고 말했다.

◇ 채권단의 기업 발목잡기〓패션업체인 신원은 자구 차원에서 최근 시가 1억원짜리 골프장 회원권 1백개를 개당 8천5백만원에 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경영관리단은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한달간 의사결정을 끌었다.

신원 간부는 "하루라도 빨리 팔려면 제값 받기는 어렵다는 점을 설득해 한달뒤 회원권 전체를 계획대로 85억원에 팔 수 있었다" 며 "의사결정에 시간이 너무 걸린다" 고 말했다.

또다른 워크아웃 업체 임원은 "웬만한 사안도 경영관리단을 설득한 뒤, 채권단 운영위원회 승인을 얻고, 다시 이사회 의결까지 거쳐야 한다" 며 "당장 추진할 일이 길게는 20일 걸린다" 고 채권단 감독체제의 비효율성을 지적했다.

금융기관들이 워크아웃 협의회에서 신규자금 지원.출자전환 등을 75% 이상 찬성으로 결정하고도 아예 1년 이상 지키지 않거나 몇달씩 미루는 경우도 많다.

은행 간부들이 파견되는 경영관리단의 일부가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경우도 있다.

D사의 경영관리단장 내정자는 이 기업 대표이사와 같은 크기의 사무실과 기사가 달린 고급 업무용 승용차 등을 요구했다가 기업측이 해당은행에 항의하는 바람에 결국 교체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경영관리단장은 부사장~전무 정도의 대우를 받는다. 은행권은 또 신규로 자금을 지원하며 '꺾기' 까지 했다. 한 시중은행은 지난해 K사에 68억원의 운영자금과 미화 9백만달러의 무역금융을 지원하며 30억원의 정기예금에 들도록 했고, 다른 은행도 신규자금을 지원하며 기존 채무와 상계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기획취재팀 고종관.이영기.권혁주, 경제부 이영렬.정경민 기자 제보〓02-751-5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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