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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반납된 훈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나라마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훈장은 보통 5등급으로 돼있고, 간혹 그보다 높은 최고훈장을 수여하는 경우도 있다.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로마에서 큰 공을 세운 군인이나 각종 경기의 우승자에게 준 표장(標章)을 훈장의 시초로 보지만 일반적으로는 11세기 십자군원정 때 예루살렘에 설립된 기사단(騎士團)의 '십자' 가 새겨진 표장을 그 기원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영어에서 기사단과 훈장을 똑같은 오더(order)로 표기하는 것도 그 견해를 뒷받침한다.

5등급으로 나뉜 훈장은 모양은 물론,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겨드랑이 밑으로 걸쳐 정장(正章)을 달아매는 1등훈장부터 왼쪽 가슴에 매다는 4등 이하의 훈장에 이르기까지 걸거나 부착하는 방식도 각각 다른데 영국의 '가터' 훈장처럼 특이한 경우도 있다.

프랑스어로 '부정한 자에게는 재앙이 있을지니' 라는 자수(刺繡)가 새겨진 폭 2.5㎝의 청색 빌로드포(布)를 왼쪽무릎 위로 감아올리게 돼있는 이 훈장에 대해서는 사실여부가 확인되지 않았지만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14세기 중엽 왕실 무도회 때 한 귀족부인이 춤을 추다가 가터(양말대님)를 마룻바닥에 떨어뜨리고 당황하자 국왕 에드워드 3세가 그녀를 감싸주기 위해 가터를 자신의 왼쪽발에 감으면서 조소하는 귀족들에게 프랑스어로 '부정한 자…' 라 말하면서 타일렀다는 것이다.

그 직후인 1348년 제정된 가터훈장은 6백50여년간 영국 최고훈장으로서 자리를 굳건히 지켜오고 있다.

카터훈장뿐 아니라 세계의 모든 훈장들은 받는 당사자는 물론 대대손손 가문의 영예로 삼고 있다.

훈장에 담겨 있는 뜻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걸맞은 대우와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고종 13년(1900년)에 처음으로 훈장조례가 제정된 이래 현재는 최고훈장인 무궁화대훈장을 비롯, 건국훈장부터 체육훈장에 이르기까지 10개 부문에 걸쳐 5개 등급씩 모두 50가지의 훈장이 수여되고 있다.

훈장의 가짓수가 많고, 받아 마땅한 사람이 많다면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장한 청백리' 로 훈장을 받은 사람이 뒷날 부정축재자로 몰린다든가 별로 한 일 없는 전직 장관들에게 선심 쓰듯 훈장을 남발한 따위의 일들이 훈장의 이름을 욕되게 하더니 최근에는 상응하는 대우를 받지 못하는 훈장은 필요없다며 반납한 사람이 49명에 이른다고 한다(본지 12월 13일자).

참으로 딱한 것은 지난 8월 씨랜드 참사로 아들을 잃은 전 국가대표선수의 체육훈장 반납이다.

훈장 남발도 문제지만 훈장을 쓸모없게 하는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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