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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품질 브랜드 만들고, 가공식품 시장 키워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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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호 22면

대형마트에서 소비자들이 다양한 브랜드 쌀을 고르고 있다. [중앙포토]

“1980년대에 쌀값은 한 가마에 12만원이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15만원에 불과하다. 올해는 그마저 12만원대로 떨어졌다.”(김창호 전국농민회 경북도연맹 사무처장)
“국민 1인당 쌀 소비량 1988년 122.2㎏에서 2008년 75.8㎏로.”(국가통계포털 양곡소비량 조사)한국 쌀의 현실이다. 물가는 치솟는데 쌀값은 20년 전 그대로다. 소비량은 20년 전에 비해 38%가량 줄었다. 값도 안 오르고 소비도 안 느니 쌀 농가의 시름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말은 사어(死語)가 됐다. 일반인들에게 쌀은 TVㆍ휴대전화와 같은 일종의 공산품일 뿐이다.

국산 쌀의 생존법

기업이 계속 성장하려면 매출 규모를 꾸준히 늘려야 한다. 한국 쌀이 살아남기 위해서도 ‘매출’이 꾸준히 늘어나야 한다. 매출을 늘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똑같은 양을 비싸게 팔든가, 같은 값이라면 많이 팔면 된다.쌀의 단가를 높이려면 ‘브랜드화’를 통한 고급화 전략이 필수다. 2000년대 들어 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지자체와 농가 등은 재배와 도정 과정을 일반쌀과 구분ㆍ관리해 품질을 높인 브랜드 쌀을 내놨다. 전국의 쌀 브랜드는 1700여 개(2008년 4월 말 현재)에 달한다. 일반쌀보다 10~40%는 더 비싼데도 소비자들이 꾸준히 찾는다.

브랜드쌀 정착을 위해 농림수산식품부와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2003년부터 매년 ‘고품질 브랜드 쌀 평가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지자체의 추천을 받은 50여 개의 쌀을 평가해 12개 우수 브랜드 쌀을 뽑는다. 지난해 최우수 브랜드로는 전북 군산의 ‘큰 들의 꿈’이 선정됐다. 3회 이상 우수 브랜드로 선정된 쌀은 ‘한눈에 반한 쌀’(전남 해남, 6회), ‘철새 도래지 쌀’(전북 군산, 4회), ‘청원 생명쌀’(충북 청원, 3회), ‘드림생미’(전남 나주, 3회) 등이다.

쌀 브랜드화는 쌀 재고 문제의 해법이기도 하다. 지난해 최우수ㆍ우수 브랜드쌀을 낸 군산시는 9월 말 쌀 재고를 모두 소진했다. 군산시 농수산물유통과 황규배 담당은 “남아도는 쌀로 전국이 난리인데 군산은 오히려 쌀이 모자라 일부 종합미곡처리장(RPC)은 군산 밖에서 쌀을 가져와 도정할 정도”라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2013년까지 시ㆍ군 단위 대표 브랜드쌀 100개소를 운영, 지난해 15%였던 브랜드쌀 취급 비율을 50% 수준으로 높일 계획이다.

기능성 쌀 개발도 고급화 전략의 하나다. 2007년 전남 무안군은 한국식품연구원과 공동으로 ‘절당미’를 개발했다. 양파ㆍ약재 등에 함유된 성분을 추출해 벼에 코팅, 혈당을 내려주는 효과가 있는 쌀이다. 농촌진흥청은 지방 흡수를 45% 이상 억제해 일명 ‘다이어트 쌀’이라 불리는 ‘감귤쌀’을 5년간 연구 끝에 만들어냈다. 영양소가 일반 현미의 3~5배는 되지만 밥맛은 좋은 ‘오색발아현미’는 가격이 일반쌀의 5배나 되는데도 올 들어 1000억원어치 팔려나갔다.

브랜드화와 같이해야 할 게 쌀 소비를 늘리는 것이다. 국내 식량용 쌀 수요는 2000년 442만t에서 올해 370만t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가공용 쌀 수요는 17만5000t에서 54만1000t으로 느는 데 그쳤다. 식생활 변화로 밥을 적게 먹는 탓에 평년작일 경우에도 해마다 40만t이 재고로 쌓인다. 일본도 쌀을 주식으로 하지만 국내보다 사정이 낫다. 일본은 가공식품용 쌀 소비량(104만t)이 생산량의 14%에 달한다. 한국은 연간 27만t 수준으로 전체 생산량의 6%에 그친다. 농식품부는 일단 2012년까지 가공식품용 쌀 사용 비중을 전체 생산량의 10% 수준(47만t)까지 높이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올 100억원, 내년부터는 매년 400억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쌀 가공식품의 선두 주자는 ‘햇반’으로 대표되는 즉석밥이다. 96년 탄생 이후 현재 1700억원 시장으로 커졌다. 그 외 쌀라면ㆍ쌀국수ㆍ쌀자장면ㆍ쌀빵ㆍ쌀고추장까지 나왔지만 아직 시장 규모는 미미한 편이다. 최근 가장 주목받는 것은 술, 특히 막걸리다. 일본의 경우 사케를 만드는 데 자국 쌀을 한 해 25만~30만t씩 사용한다. 막걸리 등 전통주 시장이 커지면 새로운 쌀 소비처가 생기는 셈이다. 현재 국내 막걸리 시장은 연간 2500억원대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 1~9월 막걸리 수출 물량은 4380만t, 금액은 356만 달러를 기록했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증가 속도(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물량은 24.1%, 금액은 23.2% 증가)가 빨라 성장이 기대된다.

당장 발등에 떨어진 쌀 재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대북 쌀 지원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정치적 고려가 필요하다. 지난해 대북 관계 악화로 쌀 지원이 중단되면서 10월 말 기준 쌀 재고량은 80만t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된다. 쌀 보관 비용만 한 해 2000억~3000억원이 들어가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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