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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장…다 필요없소" 올해만 49명 반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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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교육부는 요즘 교직을 떠나면서 명예퇴직금을 받지 못한 전직 교원 22명이 항의표시로 반납한 국민훈장을 처리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교원들은 "명퇴금의 수혜자격이 '연금 불입 20년 이상' 이기 때문에 사립에서 공립으로 옮기면서 일시금을 받은 교원들이 불이익을 보고 있다" 며 지난달 초 훈장을 놓고 간 것이다.

교육부는 반납제도가 없는 상태에서 언제까지 보관해 놓을 수도 없어 일단 각 시.도 교육청에 훈장을 내려보내면서 "개별적으로 설득해 보라" 고 지시했다.

최근 국가정책에 대한 불만의 표시나, 개인.단체의 목적 달성을 위해 정부에 훈장 등을 반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쌓이는 훈장을 처리하지 못해 난감해하던 정부가 급기야 '훈장반납제' 의 도입까지 검토하고 나섰다.

행정자치부의 집계 결과 올들어 지금까지 정부에 반납된 훈장은 49개. 정부수립 이후 이렇게 많은 훈장이 반납된 해는 없었다.

반납 '열풍' 이 불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전 필드하키 국가대표선수 김순덕(金順德.여)씨가 체육훈장 2개를 반납하면서부터다.

씨랜드 화재 참사로 아들을 잃은 金씨는 "사고 수습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태도가 실망스럽다" 며 훈장을 반납한 뒤 이민을 갔다.

국가유공자 8명은 지난 10월 "국가가 전쟁터에 나가 혁혁한 공적을 세운 이들에게 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처사" 라며 무공훈장 등을 국가보훈처에 내놓았다.

지난달 중순에는 독립운동가 후손 7명이 "생활이 곤란한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에게 배려, 연금 수혜 대상자를 손자 대까지 확대해달라" 며 건국공로훈장 등을 반납하기도 했다.

현행 상훈법에는 공적을 허위 기재하거나 범법행위를 한 경우 서훈을 취소할 수 있으나 정작 반납제도는 없어 각 부처가 훈장을 '임시 보관' 하고 있는 상태다.

이에 행자부는 일본의 훈장반납제를 모형으로 상훈법을 개정, ▶반납 절차▶반납 사유▶법적 효력 등을 법제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본의 경우 45년 '위(位).훈장 등의 반납 청원에 의한 건' 을 제정, 자유 의사에 의해 훈장을 반납할 수 있도록 했다.

특별한 사정이 생겼을 때 훈장.포장.기장 등의 반납을 정부에 신청할 수 있다.

신청 사유서를 작성, 훈장 등과 함께 총리실에 제출하면 천황의 재가를 거쳐 반납이 이뤄진다.

행자부 고위 관계자는 "최근 추세로 볼 때 반납제도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며 "하지만 이 제도가 자칫 '목적 달성을 위한 훈장반납' 을 부추길 가능성도 있어 관련조항을 신중히 검토 중" 이라고 말했다.

이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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