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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고종 '함박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함박눈 펑펑 풍년들레라

백성들 잘 먹어야 내가 편하다

그런데 이리도 추운 때

가난한 이들 헐벗고 어이 지내나

- 고종(1852~1919)

조선말 대한제국 황제 고종에게는 몇 개의 오언시가 있다.

아니 고종의 생부 대원군에게도 감회 짙은 시가 있다.

그 위 강화도령이던 철종에게도 파주행차 때 지은 시가 있고 헌종과 순조도 각각 시를 남기고 있다.

이미 기울어가는 국운이나 외척정치가 판치고 세상은 근심으로 가득한 때였다.

왕이 서투르게나마 시흥을 불러일으킴이 애틋하다.

고종이라는 왕이야말로 한 나라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꺼진 촛불이었다.

하지만 그런 쇠망 자체가 근대 공화제의 시련을 낳게 된 것이다.

겨울 눈이 푸짐하면 다음해 농사는 보장된다.

그러나 겨우살이 가난한 백성을 연민함이 왕의 품성답다.

암, 마음으로나마 그래야겠지.

고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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