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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공모해 보험 사기 … 남편 실종처리 12억 타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2002년 1월 초 부산에 살던 정모(45)씨는 친구들과 함께 경남 통영으로 바다낚시를 갔다. 배를 타고 들어간 조그만 섬에서 갯바위 낚시를 즐기던 중 ‘사건’이 일어났다. 한밤중에 정씨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정씨의 낚싯대는 부러져 있었고 그 옆에는 신발이 놓여 있었다. 낚시하다가 바다에 빠진 것으로 생각한 일행은 부랴부랴 해양경찰에 신고했다. 해양경찰은 장기간 수색 작업을 벌였으나 정씨가 입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옷가지만 찾았을 뿐이다. 끝내 발견되지 않은 그는 사망 처리됐다.

다음 해 3월 정씨의 아내 서모(41)씨는 “남편이 지난해 바다낚시를 하다 ‘실종사’했다”며 3개 보험사에서 사망 보험금 11억7400만원을 받았다. 정씨가 실종 2개월 전인 2001년 11월 들어 놓은 생명보험 덕분이었다. 보장받을 수 있는 범위는 좁지만 사망 보험금이 거액인 보험들이었다.

잊혀져 가던 정씨의 실종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6년이 지나서였다. 9월 17일 금융감독원 보험범죄신고센터를 거쳐 서울중앙지검에 있는 ‘보험범죄 전담대책반’에 제보가 접수된 것이다. 정씨가 살아 있는 모습을 부산에서 목격했다는 내용이었다.

대책반은 제보자를 조사한 뒤 부산에 수사관을 급파해 10월 1일 부산 송정해수욕장에서 정씨를 검거했다. 수사 결과 정씨의 실종은 정씨의 실직과 사업 실패로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자 부부가 함께 꾸민 사기 행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부인 서씨에겐 보험설계사로 일한 경험이 있었다. 당시 정씨는 남들의 눈을 피해 몸을 숨긴 뒤 이종사촌인 하모(46)씨가 몰고 온 모터보트를 타고 섬을 빠져나왔다. 이어 육지에서 기다리고 있던 처남 서모(35)씨의 차량을 이용해 통영 지역에서 벗어났다. 하씨와 서씨는 그 대가로 정씨 부부에게서 수천만원을 받았다.

정씨는 대전과 부산 등을 떠돌았다. 정씨 부부의 도피 생활은 꽤 호화로웠다. 이들은 타 낸 보험금으로 부산의 고급 아파트와 서울 상가를 샀다. 정씨는 수입 스포츠 세단 2대를 보유했다. 그는 인터넷 카페 수입차 동호회에 가입해 회원들과 함께 시속 200㎞ 이상의 자동차 경주를 즐기기도 했다.

그러나 보험 사기극은 6년6개월 만에 전모가 밝혀졌다. 공소시효(7년) 만료를 불과 6개월 남긴 상태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는 30일 정씨 부부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또 서씨와 하씨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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