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황혼이혼' 첫 제동 걸려…"남편 가부장적 행동 이혼사유 안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칠순을 넘긴 할머니가 가부장적 남편을 상대로 낸 '황혼이혼' 소송에 대해 대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대법원 특별2부(주심 李容勳대법관)는 8일 중학교 교사 출신인 A씨(76)가 남편(84)을 상대로 낸 이혼 등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A씨의 상고를 기각,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지난 46년 중매로 결혼, 슬하에 1남3녀를 두었다.

남편은 50년 넘는 결혼생활 동안 상당한 돈을 벌면서도 부인에게는 생계유지에도 빠듯한 돈만을 줬고 욕설.폭행을 하는 일도 잦았다.

나이가 들어서는 의처증이 생겼고 치매증세까지 보였다.

견디지 못한 A씨는 97년 남편 돈 5천여만원을 들고 큰딸 집으로 피신했고, 남편은 부인을 절도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결국 할머니는 정신병원에서 남편이 '망상장애' 란 소견을 받은 뒤 이혼청구소송을 내 지난해 가정법원으로부터 "두 사람은 이혼하고 남편은 위자료 3천만원과 재산분할분 7억원을 주라" 는 판결을 받아냈다.

그러나 남편의 항소를 받아들인 서울고법은 "남편이 생활비를 적게 줘 어려운 생활을 했지만 이런 절약으로 18억원에 이르는 재산을 모았다.

혼인 당시의 가치기준을 감안할 때 남편의 가부장적 행동으로 결혼이 파탄에 이르렀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할머니에겐 오히려 정신장애 증상을 보이는 남편을 돌볼 의무가 있다" 며 이혼청구를 기각했었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문에서 "부부의 연령과 혼인기간 및 혼인 당시 가치기준 등을 참작한다는 것이 나이든 부부의 이혼을 허용할 수 없다거나 남존여비 관념으로 이혼을 제한하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고 밝혔다.

그러나 이날 대법원 판결을 놓고 가부장적 권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여성의 행복추구권을 박탈했다는 여성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최현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