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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단샤 창립 90돌기념 '영웅의 역사' 출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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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이 세계는 신의 의지에 의해 움직인다. 신의 의지를 대행하면서 인간을 지배하는 자가 곧 영웅이다. " 영국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1795~1881)의 말이다.

그는 세계의 역사는 곧 영웅의 역사라고 정의한다.

그에게 영웅은 곧 숭배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다.

칼라일처럼 영웅에 대해 긍정론을 편 역사가가 있는 반면 중국의 학자 리쭝우(李宗吾. 1879~1944)는 고금을 통틀어 수많은 왕후재상과 영웅호걸이 있었지만 낯이 두껍고 마음 속이 시커먼 사람만이 성공하고 출세했다며 영웅들을 조롱하고 비판했다.

영웅치고 삼강오륜(三綱五倫)을 저버리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되냐는 것이다.

옛 말에 영웅기인(英雄欺人.영웅은 책략을 써서 남을 잘 속임)이란 말이 나온 것도 아마 이런 점을 두고 나온 말일 터다.

일본 고단샤(講談社)가 창립 90주년 기념으로 펴낸 '영웅의 역사' (솔.전 10권.각 권 9천5백원)는 진(晉)문공.진시황제.손자에서부터 제갈공명.조조를 거쳐 한무제.당태종.명 주원장 등에 이르는 중국 영웅 32인의 생애를 다룬 대작. 이중 1권 '패자(覇者)의 길' 과 2권 '제자백가(諸子百家)' 편이 먼저 출간됐다.

인물 서술에 있어 '영웅의 역사' 가 가지는 미덕은 객관성에 있다.

일방적인 찬양과 어설픈 영웅에 대한 폄하는 절제돼 있다.

먼저 필진들을 일본 지성계를 대표하는 학자.소설가.평론가로 구성해 엄정성을 더했고 이들이 고고학 자료와 문헌을 통한 고증과 검증을 바탕으로 인물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또 영웅의 대열에 불세출의 영웅 외에 폭군(暴君).독부(獨夫)도 포함시켜 독자들이 영웅의 폐해가 주는 경계심을 놓지 않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열전(列傳)식의 글쓰기로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 다양한 사진.연표.지도 등을 곁들이고 있는데 그래서 이 책을 학술서 성격이 짙은 대중적 역사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1, 2권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여섯이다.

공자로부터 거짓이 많고 의롭지 못하다는 평을 듣기도 한 인물이었지만 실제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게하는 탁월한 인격으로 19년의 망명생활 끝에 패자에 오르는 진 문공.

겸허와 자기 억제를 모른다는 점에서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닮았다고 평가받지만 생부(生父)인 여불위의 죽음을 재촉한 뒤 외진 곳에서 눈물로 탄식하는 인간적 면모를 지닌 진시황제.

합종과 연횡책이란 각본으로 전국 시대의 일곱 나라를 요리하는 모습에서 이 시대 정치의 한 모습을 가늠케 해 주는 소진과 장의.

이밖에 '와신상담(臥薪嘗膽)' 의 고사를 오늘까지 전해주는 오왕 부차와 월왕 구천, 법가사상을 집대성한 학자 한비자, '손자병법' 의 손자.

이 군웅(群雄)들이 펼쳐보이는 위풍당당한 대륙적 기질과 절묘한 처세술은 또 다른 난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감탄과 한숨을 함께 엮어내기 충분하다.

혹 영웅들의 위풍당당함과 절묘한 처세를 읽어가면서 나의 영웅적 기질은 어디에 있는지 한번 찾아보면 어떨가.

10권의 책임 편집은 대만계 일본 역사소설가 천순천(陳舜臣)과 오자키 호츠키(尾崎秀樹)가 맡았으며 솔 출판사는 이번 1차분에 이어 내년 2월까지 10권을 완간할 계획이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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