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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사계] 뿌리 안뽑히는 부패 '홍바오'와의 전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5일자 중국청년보(中國靑年報)1면엔 '훙바오(紅包)금지령' 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렸다.

훙바오란 춘절(春節.설)등의 명절에 중국인들이 붉은색 봉투에 넣어 보내는 감사표시의 돈을 가리키는 말이다.

연말을 맞아 푸젠(福建)성 정부가 '당과 국가기관 공작자들의 훙바오 주고받기 금지에 관한 임시규정' 을 발표했다.

푸젠성 기율위원회와 감찰청이 합동 제정한 규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천위안(약 14만원)이하의 훙바오를 주고받은 공직자들은 당과 행정기관의 경고처분을 받는다.

1천~5천위안이면 당의 엄중한 경고나 당내 직무가 박탈되고 행정기관에서는 강등된다.

5천~1만위안은 당과 행정기관으로부터 모두 쫓겨나고 당의 관찰대상으로 감시를 받는다.

1만위안 이상이면 파면은 물론 당적까지 박탈당한다.

한국돈 1백40만원 이상을 주고받으면 공직에서 영구 추방되는 셈이다.

중국인들의 월급이나 물가를 감안해도 매우 엄격해 보이는 처벌이다.

그만큼 훙바오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중국의 부정부패가 심각하다는 반塚繭?할 수 있다.

광둥(廣東)성 쉬원(徐聞)현의 현서기 쑤펑쥐안(蘇鳳娟)은 춘절 다섯번을 세면서 60만위안을 훙바오로 받았다.

하얼빈(哈爾濱) 상무부시장이던 주성원(朱勝文)이 챙긴 수백만위안 중에 상당액은 훙바오라는 형식을 통해서였다.

하이난(海南)성의 둥팡(東方)시 시위원회 서기이던 치훠구이(戚火貴)도 시류(西流)농장에서 맞은 첫 춘절에 5만위안의 훙바오를 받았다.

미풍양속을 빙자한 훙바오가 사회주의 중국 경제의 대표적인 뇌물로 자리잡은 것이다.

중국당국의 단속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93년 중앙정부는 '유가증권과 현금 선물 금지령' 을 발표했고, 95년엔 '공직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선물 수수 금지령' 을 선포했다.

97년엔 '중국 영도간부들의 청렴준칙' 까지 제정해가며 훙바오 추방운동을 지속적으로 벌여왔다.

그럼에도 단속의 효과는 별로 크지 않았던 것 같다.

효과가 있었다면 무엇 때문에 2년마다 한번씩 훙바오와의 전쟁을 벌여야 했겠는가.

올해는 춘절을 두달 이상 앞두고 12월 초부터 단속에 들어갔다.

부패단속의 책임이 있는 지방의 기율위는 그 지방 당서기의 휘하에 놓인다.

반부패 조사국도 해당 지역 검찰원 소속으로 잡범들만 잡을 수 있다.

제도적으로 권력의 심층부를 조사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이같은 상황을 비꼬아 '엉덩이가 머리를 지배한다' 는 자조적 유행어까지 나돈다.

부패 조사를 맡은 관리들이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으니 머리를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유상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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