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한국의 20세기 과학인물] 생명과학 '우장춘' 박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55면

20세기는 한국에서도 예외없는 과학의 시대였다. 큰 발자취를 남긴 우리 과학자를 4회에 걸쳐 소개한다.

식탁에 오르는 농작물이나 관상용 화훼류치고 '야생상태' 인 것은 거의 없다. 재배하기 좋고 영양가도 높게 유전적으로 개량됐다는 말이다.

우장춘(禹長春.1898~1959)박사는 이런 '유전적 개량' 의 학문적 틀을 제공, 세계에 이름을 날렸다. 스웨덴 등 여러 나라의 교과서에 연구 업적이 실린 한국 과학계의 선구자이기도 하다.

'씨없는 수박' 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알고 보면 그의 연구 업적은 이것이 아니다. 씨없는 수박은 일본에서 이미 개발된 것을 그가 국내에 들여와 재현해 보였을 뿐이다.

세계 생물학계를 놀라게 한 그의 공적은 '종의 교잡을 통한 유전 연구' 였다. 우박사는 30년대초 배추 유사 식물의 교배를 통해 식물의 유전적 근연(近緣)관계를 파악했다.

당시 그의 연구는 학자들 사이에서 최근 유전자 변형 식물의 등장만큼이나 획기적인 것이었다. 예컨대 홑꽃 페추니아를 겹꽃으?만드는 데 성공, 한때 이 페추니아는 '우장춘꽃' 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의 주요 연구는 모두 일본에서 이뤄졌다. 그는 구한말 일본으로 망명한 아버지(우범선)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우박사는 36년 '종의 합성' 이론을 내놨다. 이 이론은 '종은 자연도태의 결과로 성립한다' 는 다윈의 진화론을 보완한 것으로 두고 두고 학자들 사이에 그 이름을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45년 9월 광복과 함께 영구 귀국하려 했으나 하지 못했다. '대마도는 내줄 수 있어도 우장춘은 내줄 수 없다' 는 유명한 일화가 이때 생겨났다. 우박사는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50년 귀국, 부산 원예시험장을 맡아 이끌었다. 그는 이곳에서 학술적 기반을 바탕으로 배추.감자.양파 등을 한국 기후에 맞는 품종으로 바꿔냈다.

그는 말년에 식량 자급자족을 위해 우수 벼품종 육종에 매달렸다. 그러나 십이지장 수술 후유증은 불세출의 한 과학자로부터 모든 것을 앗아갔다. 조금만 더 살았다면 통일벼 같은 다수확 품종이 십수년은 앞서 개발될 수도 있었다는 후학들의 안타까움이 과장이 아닐 만큼 그는 뛰어난 학자였다.

김창엽 기자

◇ 추천 전문가〓복성해.유장열.이대실(이상 생명공학연구소), 장남기.이인규.강현삼.이계준(이상 서울대), 유욱준.박찬규.최준호(이상 과학기술원)

◇ 선정방법〓추천인들이 복수 추천한 이 가운데 최다 추천된 이로 선정. 우박사와 함께 MIT의 피터 김(이중 용수철 단백질 규명).미 버클리대의 김성호(tRNA 구조발견)박사가 최다 추천자로 뽑혔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