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크 걸린 뉴라운드] 시애틀 회담 왜 결렬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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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시애틀 각료회의의 결렬은 무역 자유화를 자기 의도대로 추진하려는 미국과 이에 반발하는 나라들간의 정면대립에서 비롯됐다. 노조를 의식한 미국은 노동과 무역의 연계를 강력하게 주장했으나 개발도상국들이 거세게 반발했고, 개정불가를 주장했던 반덤핑규정 문제에서는 세불리를 느꼈다. 국면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자 미국은 결국 협상을 중단하고 냉각기를 갖는 방법을 선택했다. 이번 회의가 결렬된 이유와 향후 전망, 한국의 득실을 알아본다.

◇ 왜 결렬됐나〓유럽연합(EU).일본 등이 미국에 맞먹는 확실한 발언권을 행사하고 우루과이라운드(UR)에 비해 개발도상국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도 이번 회의의 특징. 미국은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있는데다 노조들이 대거 참여한 WTO반대 시위로 인해 이번 협상에서 자기의 목소리를 많이 실으려했다.

외국의 수출공세에 제동을 거는데 가장 효과적인 반덤핑조치를 계속 고수하려고 한데다 중국 등 개발도상국의 값싼 수출상품제조에 근본적으로 제동을 걸기위해 근로조건이 나쁜 나라에 대해 무역제재를 가하는 무역라운드를 출범시키려 했다.

그러나 한국.일본.EU등이 연합전선을 구축해 반덤핑규정 개정을 강력히 추진했고, 인도.이집트 등 개발도상국가들은 노동라운드에 결사 반대하면서 미국의 시도는 좌절됐다.

너무나 많은 의제를 짧은 시간내에 논의하려한 것도 협상결렬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사전에 선언문 초안에 대한 합의없이 각료들의 '정치적 역량' 에만 기대어 농산물에서 전자상거래에 이르기까지 무려 10여개 분야에 대한 합의를 추진했다는 것이 무리였다는 지적이다.

◇ 향후 전망〓외교통상부 관계자는 "뉴라운드 출범이 완전 무산된 것이 아니라 시애틀 각료회의가 결렬돼 협상이 중단됐다는 의미" 라고 설명했다.

정확한 일정은 나오지 않았지만 내년초 제네바에서 후속 회의가 재개될 전망이다.

선언문채택에는 실패했지만 농업분야에도 상당한 협상진척이 이뤄졌고 서비스개방.공산품관세인하 등은 사실상 타결된 상태여서 향후 후속논의를 거쳐 뉴라운드 출범은 가능할 것이란 것이 외교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WTO체제 유지라는 대의를 위해 각국이 서로 양보할 수 있느냐가향후 협상 성공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 한국의 득실〓뉴라운드가 당초 일정대로 출범하지 못한 것은 한국에는 불리한 상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선진국의 보호주의 조짐을 완화하기위해선 뉴라운드 출범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는 것이 우리 정부의 시각이었다.

그러나 이번 회의가 아무 소득없이 끝나게 돼 한국으로선 어려운 처지에 놓일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한국은 당초 농산물 부분에서 일정부분 시장개방을 허용하더라도 공산품 관세인하 등을 통해 수출시장 확대를 꾀할 수있다는 입장이었다.

한국은 협상타결을 전제로 농산물분야에서의 우리 입장을 이미 내보였기 때문에 반덤핑.공산품 관세인하 등에서 실익을 얻기위해 뉴라운드 출범을 서둘러야하는 큰 부담을 안게됐다.

미국이 뉴라운드 출범을 외면하고 발언권을 강하게 행사할 수 있는 각개격파식 양자협상을 통해 개방압력을 가해올 경우에 대비한 대응책 마련도 시급한 과제다.

시애틀〓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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