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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굴비' 돈 상자가 말해주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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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안상수 인천시장의 여동생 앞으로 굴비상자에 든 현금 2억원이 전달된 사건은 엽기적이다. 안 시장은 취임 이후 "도와주겠다"며 돈을 건네려는 시도가 30여 차례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땀 흘리며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맥 빠지게 하는 우울한 장면들이다.

지금 지방자치단체들은 지방화.분권화의 바람을 타고 막강한 권한을 누리고 있다. 발주하는 공사의 연간 계약규모만도 정부 예산의 10% 수준인 17조7000억원에 이른다. 그렇다면 행정시스템이 투명하게 작동되고 단체장을 포함한 공무원들은 고도의 청렴성을 갖춰야 마땅하다. 하지만 현실은 이와는 정반대로 굴러가고 있다. 각종 인허가를 받고 공사를 따내려는 업자들의 로비와 뇌물이 지방공직자를 부패시키고 있다.

심지어 자신이 결재한 그린벨트 해제 예정지를 조카 등 지인의 명의로 사들인 뒤 되팔아 수백억원대의 이익을 챙기려다 구속된 파렴치한 '투기꾼 단체장'까지 나왔다. 오죽하면 단체장과 지방의원의 배우자 등 특수관계인은 해당 지자체가 발주하는 사업의 입찰에 참여할 수 없도록 하는 지방계약법의 제정이 추진되겠는가.

더 불길한 것은 지방정부의 부패가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민선 3기 단체장 가운데 두 사람은 비리혐의로 조사를 받다 자살했고, 구속되거나 조사 중인 단체장도 20명이 넘는다. 지방관가에선 사무관으로 승진하려면 3000만원, 서기관으로 승진하려면 5000만원이 든다는 '사삼서오(事三書五)'라는 말이 떠돈 지 오래다. 한 단체장은 "단체장의 70% 이상이 승진 대가를 받고 있다"고까지 했다.

이런 상태로 가면 지방자치는 '부패자치'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단체장 비리의 가장 큰 요인은 막대한 선거비용 충당과 개인적 자질의 부족이다. 주민소환제를 포함한 강력한 견제장치가 도입돼야 비리를 적시에 차단할 수 있다. 아울러 지방정부가 갖고 있는 과도한 규제를 풀어야 또 다른 '굴비상자 뇌물'의 소지가 줄어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