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단 하나밖에 없는 나의 단벌 루바쉬카를 입고
황혼의 거리 위로 걸어간다
굵은 줄로 매인 나의 허리띠가
퍽도 우악스러워 보이는지
뿔떡 독일종 강아지가
나를 보고 쫓아오며 짖는다
'짖어다오 짖어다오!'
내 가슴의 피가 너 짖는 소리에
조금이라도 더 뛰놀 것이다
나는 또 걷는다
다 떨어진 병정구두를 끌고
태양을 등진 이 거리 위를
휘파람을 불며 걸어간다
-박팔양(朴八陽.1905~?) '태양을 등진 거리에서' 중
19세에 신춘문예에 당선,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나왔다.
그 뒤로 국내외 언론계에 있으면서 동반자 계열의 시인이었다.
태양을 등진 거리란 물어볼 것 없이 일제 암흑기 그것이다.
그 때 외투 한 벌, 헌 구두 한 켤레면 도시의 인텔리겐치아로서는 댄디였다.
강아지 한 놈에 대고 '짖어다오' 를 연발함이 좀 겸연쩍다.
절망도 때로 사치였던가.
해방 직후 월북, 지금 그는 생사불명이다.
고은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