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특공대 투입은 정당한 공무집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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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올해 1월 서울 용산 재개발구역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다 화재를 일으켜 경찰관 등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농성자 9명에게 모두 유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한양석)는 28일 농성을 주도한 이충연(36) 용산4구역 철거대책위원장 등 2명에게 징역 6년씩을, 김모씨 등 5명에게는 징역 5년을 각각 선고했다. 가담 정도가 낮은 조모씨 등 2명에게는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농성자들이 경찰특공대를 향해 던진 화염병의 불길이 인화물질에 옮겨 붙으면서 화재가 발생했다”며 “검찰의 공소사실이 모두 인정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동인구가 많은 한강대로변의 건물에 무단 침입해 위험한 농성을 벌이는 농성자들을 신속하게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특공대를 조기에 투입한 것은 정당한 공무집행”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보상 규정이 만족스럽지 않고 사정이 절박했어도 건물을 무단으로 점거하고 최소한의 진압장비만 갖춘 채 공무를 집행하는 경찰을 향해 위험물질을 쏟아부은 것은 국가 법질서를 유린하는 행동으로 법치국가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럼에도 피고인들은 경찰과 용역직원에게 책임을 전가했고 법정에서 재판을 방해했으며 정치적인 장으로 변질시키려 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선고 도중 이충연 위원장 등 피고인 2명과 김형태 변호사는 선고 내용에 반발해 법정에서 일방적으로 나가 버렸다. 김주환 피고인은 나가면서 “이건 재판이 아니다”고 소리를 질렀으며, 방청객들도 일어나 소란을 피우다 한 명이 감치됐다.

변호인단은 재판 과정에서 농성자들이 ‘살기 위해’ 망루에 올랐다고 주장했다. 턱없이 부족한 보상금과 철거민을 일방적으로 내모는 재개발 사업에 대항하려면 점거 농성이 불가피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법치국가에서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사회적 약자라고 하지만 일부 피고인은 1인당 1000만원씩을 모아 농성자금을 마련하고 망루 농성에 필요한 ‘시위용품’을 구입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피고인들은 전국철거민연합 회원으로 용산 재개발과는 아무 관계가 없으면서 전철연의 투쟁지침에 따라 망루 농성에 가담해 끝까지 저항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특히 “이충연 위원장은 경찰 특공대의 진압작전이 시작된 뒤에도 농성자들에게 계속 폭력행위를 조장하고 독려했다”고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검찰과 변호인이 치열하게 다퉜던 화재 원인에 대해서는 “농성자들이 던진 화염병 때문”이라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였다. 변호인은 사건 현장에 있던 발전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두 대의 발전기 중 망루 내부에 있던 발전기는 꺼져 있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찰이 과잉 진압을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경찰은 전철연 간부와 대화를 시도했으나 농성자들이 ‘경찰의 선 철수’를 전제조건으로 내걸어 무산됐으며, 이런 가운데 농성자들은 한강대로에 벽돌과 염산병 등을 던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경찰이 방패와 소화기 등 최소한의 장비만을 소지한 특공대를 투입한 것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날 선고 직후 유족과 구속된 피고인들의 가족은 피고인석으로 몰려들어 오열했다. 이들은 재판부가 퇴정한 뒤에도 10여 분 동안 법정에 남아 “이 재판은 무효”라며 욕설을 퍼붓고 항의했다. 김형태 변호사는 “재판부가 정치적 판단을 내렸다. 이 사건은 증거법으로 판단하면 100% 무죄”라고 주장했다. 용산철거민 범국민대책위원회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죄 부분을 검찰이 기소한 대로 인정한 것은 재판부가 사법정의를 포기한 것”이라며 “즉각 항소할 것이고 이 사건에 대해 특별검사가 도입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우·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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