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부쩍 크긴 했는데…올 시장점유율 4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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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할리우드 직배 영화를 위협하는 한국 영화…' 예전엔 국내 영화인들의 희망사항에 불과하거나 그들 사이에서 농담으로만 거론됐다. 그러나 이것이 더 이상 희망사항은 아니다. 한국영화 시장점유율이 40%를 넘어선 것이다.

지난 9월 말까지 한국영화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35.3%.여기에 10월 이후 개봉돼 각각 90만.55만명의 관객을 끌어 모은 '주유소 습격사건' 과 '텔 미 썸딩' 의 흥행 성적을 더하면 점유율이 40%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같은 기간 시장점유율이 18.9%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영화는 1년 사이에 큰 도약을 했다.

이 같은 변화는 올해 개봉된 각 영화들의 개별 흥행 기록에서도 쉽게 나타나 지난해까지만 해도 흔히 '흥행작' 하면 관객 20~30만명 동원수준을 가리키던 것이 올해는 40~50만명 이상으로 기준이 부쩍 올랐다.

'쉬리' (243만명) '유령' '자귀모' (40만명) '인정사정 볼 것 없다' (70만명) '주유소 습격사건' '텔 미 썸딩' 등이 다 여기에 속한다.

올들어 한국영화가 부쩍 힘을 발휘하게 된 이유는 과연 뭘까. 영화의 완성도가 높아졌다는 것을 빼놓을 순 없지만 그것만으론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영화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완성도가 뛰어나도 흥행에서 실패한 영화들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올해 국내에선 '투갑스' 의 강우석 감독이 이끄는 배급사 '시네마서비스' 에 의해 조직적인 배급이 이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 주요 요인으로 지적된다.

한 극장관계자는 한국영화의 비약을 가리켜 아예 '배급의 승리' 라고 요약할 정도. 올해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자귀모' '주유소 습격사건' '텔 미 썸딩' 등의 영화를 배급한 시네마서비스는 탄탄하게 갖춘 차기 상영작 목록을 무기로 극장을 밀어붙여 한국 영화의 상영관을 수를 대폭 늘렸다.

안정된 상영관 확보는 영화 흥행의 기본 조건이다. 또 올해 눈길을 끄는 할리우드 영화가 별로 없었던 상황도 한 몫 했다.

대단위 규모의 볼거리로 몰아붙이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들이 올해는 크게 눈에 띄지 않았고, 빤한 할리우드 영화에 관객들은 식상해했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들이 할리우드 영화엔 다소 인색해진 반면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유사 할리우드 영화' 엔 관대하다는 점이다.

한국영화가 영상 스타일이나 특수효과 등에서 할리우드의 영화와 유사한 수준으로 도약한 것에 대해 관객들이 점수를 높이 주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 이라는 특정 공간에서 관객의 취향과 관심을 반영한 발빠른 기획과 적극적 마케팅이 관객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점유율 40%' 에 대해 국내 영화계는 크게 기뻐하지도 못하는 아이러니컬한 상황에 처했다.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제 유지를 주장하면서 이 '40%' 를 상한선으로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더 큰 우려는 따로 있기도 하다. 적잖은 영화인들은 "양적인 성장은 인정한다. 그러나 영화 자체가 가진 완성도보다 주변의 여건이 더 큰 힘을 발휘한 게 아닐까. 양적인 성장만큼 질적인 비약을 장담할 수 있을지…. " 라고 말한다.

한국영화, 아직 '잔치' 를 벌이기엔 이르다는 얘기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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