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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럼] 법조인은 모두 죽여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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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법조인은 모조리 죽여라(Kill all the lawyers)' -. 셰익스피어의 '헨리6세' 2막4장에 나오는 이 말은 미국에서 율사(律士)들, 특히 변호사들을 질타할 때 즐겨 인용된다. '변호사들은 상어도 먹지 않는다' 는 조크도 있다. 피차 '사람을 뜯어먹고 사는' 처지에 상어인들 입맛이 동하겠느냐는 비아냥이다. 영화 '주라기공원' 에서는 공룡이 변호사를 우적우적 삼켜버리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은 '율사들의 나라' 다. 화이트칼라 사무직 1천명당 변호사가 38명꼴이고, 특히 행정수도 워싱턴은 변호사가 5만7천여명으로 도심인구 10명당 1명꼴이다. '소송망국' 이란 말이 유행될 정도로 시민들이 각종 송사(訟事)에 시달린다. 변호사를 사는 데 막대한 돈이 들고, 또 송사에 시달릴 때가 개인적으로 가장 불행한 시기로 기억되기 때문에 변호사에 대한 인식이 좋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변호사들을 '모조리 죽여버린다' 면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미국이 무너진다. 역대(歷代)대통령 42명 가운데 현직 빌 클린턴 대통령을 포함해 25명이 변호사고, 상원의원은 평균해 60%가, 하원의원은 42%가 변호사다. 게다가 전국 1백75개 로 스쿨에서는 해마다 5만4천여명이 법조계로 쏟아져나온다. 그럼에도 문닫는 로 스쿨은 없다. 법률적.사회적 수요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많은 인용(引用)들이 그렇듯 사실 셰익스피어의 '법조인 죽이기' 도 전체문맥과는 동떨어진 '제논에 물대기' 식이다. '헨리6세' 에서 한 등장인물이 무정부상태를 초래하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좋겠냐고 묻는다. "화폐를 없애고, 법조인들을 모두 죽이면 된다" 는 대답이 이어진다.사회질서 유지에 법조인의 역할을 셰익스피어는 그만큼 평가한 것이다.

법조인이 '발길에 챌' 정도가 돼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고귀한 분' 이 돼서도 곤란하다. 텍사스대의 경제학자 스티븐 매기는 92년 경제학적 관점에서 한 나라의 변호사 적정숫자를 추정한 '매기 곡선' 을 공표한 적이 있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성장률과 화이트칼라 사무직 1천명당 변호사 숫자를 국가별로 대비하며 성장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적정 변호사 숫자를 그려냈다. 사무직 1천명당 변호사가 23명일 때가 적정이고, 그 아래인 경우나 그보다 많은 경우는 성장을 저해한다는 주장이다.

변호사가 너무 많으면 송사를 조장해 사회 전체로 거래비용이 증가한다. 또 국회의원 중에 율사들이 많으면 집단이익을 반영하는 입법이 많아지고, 그 결과 국가적 효율이 떨어져 성장을 둔화시킨다. 이 기준으로 따져 미국은 너무 많고, 일본은 약간 적으며 동아시아 대부분의 나라들은 크게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미국은 경제의 지속적 성장에다 '글로벌 법률수요' 까지 겹쳐 변호사수도 계속 늘고 있는 추세다.

우리의 문제는 전체 숫자도 숫자지만 이 숫자를 원천적으로 제한하고, '좁은 문' 을 통과한 소수에게 독점적.특권적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너도나도 고시에 목을 매게 만든 데 있다. 이는 세가지 면에서 국가적 문제를 제기한다.

공대생까지 고시에 매달리는 국가 인적자원 배분의 왜곡이 첫째다. 수험위주의 획일적이고, 판박이 '젊은 영감' 들을 양산해냄으로써 다양성.전문성.국제성 등 시대가 요구하는 법조인의 자질향상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점이 둘째다. 공급제한에 따른 수급불균형으로 수요자는 원천적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경쟁의 제한으로 수임료가 비쌀 수밖에 없고, 분야별로 특화 및 전문화가 안돼 법률서비스의 질 향상도 기대하기 어렵다.

근본적인 타개책은 진입(進入)장벽을 허물고 경쟁과 시장원리를 도입하는 길밖에 없다. 궁색한 단계적 정원 늘리기보다는 아예 자격시험제로 가야 한다. 대학에서 자유롭게 기본소양을 쌓고, 원하는 사람들이 법률을 공부해 자격을 딴 다음 '시장' 에 들어와 치열한 경쟁을 거치면서 가장 우수한 자만이 살아남도록 해야 한다. 판.검사는 변호사경력 최소한 5년 이상의 인재 중에서 골라 임용함이 합리적이다.

'법조인 때리기' 에도 아랑곳없이 로 스쿨이나 '법대선호' 는 선진사회라고 다를 게 없다. 그럴수록 제대로 된 법조인을 길러내는 양성과정과 시스템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우리의 사법개혁은 기득권의 덫에 걸려 좀체 진전을 모른다.

'법조인은 모두 죽여라' 는 구호는 듣기에 섬뜩하다. 그러나 이 글귀가 새겨진 T셔츠를 입고 다닐 정도로 선진사회는 여유와 '운치' 가 있다. 하지만 내용면에서 우리의 '고시망국론' 이 나라의 장래와 관련, 훨씬 더 심각하고 절박한 과제라는 점을 법조계는 깊이 깨달아야 한다.

변상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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