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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인어’ 최윤희, 두 수재 아들과 시애틀 라이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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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가수 유현상과 13세 나이 차를 극복하고 ‘부부 연’을 맺은 최윤희. 결혼과 동시에 수영 선수 생활을 접고 현모양처의 길을 걸어온 그녀는 7년째 기러기 가족 생활을 하고 있다. 두 아들의 조기 유학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미국 생활과 다정한 남편하고 장거리 연애하듯 지내는 그녀의 시애틀 라이프.

최근 예능계 늦둥이가 된 유현상이 방송을 통해 공개한 연애 시절 비화가 화제로 떠올랐다.“남편이 어떤 프로그램에 출연하는지 적어놨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꼭 챙겨 봐요. 저도 까마득히 잊었던 옛날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재밌던걸요. 그때 애 아빠에 대해 몰랐던 게 참 많았던 것 같아요(호호).”

다방 커피만 마시던 그가 아내에게 잘 보이기 위해 블랙커피를 마시는가 하면, 책에서 좋은 글귀를 읽고 얘깃거리로 준비했던 것….

“전 정말 애 아빠가 블랙커피를 좋아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서는 블랙커피에 자꾸 연유를 넣어달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엄청 달잖아요(호호).”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로맨티스트 남편의 애정 공세가 최윤희에게는 귀여운 애교로 느껴진단다.

13세 연상 남편과 비밀 연애담, 여전히 설레는 남편의 진짜 매력

결혼 20년 차인 두 사람의 비밀 결혼식으로 거슬러 올라가 봤다. 당시 국민 스타였던 그녀와 10m 떨어져 걸으며 몰래 데이트를 했던 남편. 4살 때부터 수영만 해서 세상 물정을 몰랐던 그녀를 위해 남편은 생전 가지도 않던 새벽에 수산 시장엘 가고, 미술 전시회도 갔다.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당시 최윤희는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했고,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에 올랐다. 뛰어난 수영 실력과 청순한 외모로 ‘아시아의 인어’라고 불리며 수영 스타로서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김연아의 인기를 능가했던 것.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13세 연상의 가수, 장인과도 13세 차이였기에 친정엄마는 극심한 반대를 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너 명의 증인만 참석한 가운데 조촐한 결혼식을 올렸다. 증인 중 한 명은 ‘부활’의 이승철이었다. 그때 그녀의 나이는 스물넷이었다.

“결혼식 올리는 순간까지도 장소를 모른 채 그냥 따라갔어요.”

이들은 그렇게 한 사찰에서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고, 결혼식 사진을 찍어줄 사진사도 없어 결혼사진이 없다. 부케를 줄 사람이 없어 시할머니 산소에 부케를 두고 친정에 인사를 하러 갔다. 내심 섭섭하지 않았으냐는 말에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당시에는 충분히 진지했고 지금도 행복해요”라며 여전히 변함없는 애정을 과시했다. 그 나름대로 소중했다는 것에 대한 의미는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극심한 반대와 대중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사랑을 지켜낸 두 사람. 남편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다정하다.

“연애할 때보다 결혼하고 나서 훨씬 더 잘해줘요. 길을 가다가도 예쁜 것만 있으면 사다주는 거예요. 머리띠를 좋아했는데 얼마나 많이 사다줬는지, 좌판 깔고 장사해도 될 정도예요(웃음).”

남편은 아내가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한 번도 반대한 적 없고 척척 알아봐주는 인생 매니저나 다름없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미국 유학을 제안했을 때도 기러기 아빠를 자처했고, 그녀가 대학원 공부를 하겠다고 했을 때도 적극적인 지지를 아끼지 않았다.

“가수라 하면 자유 분방하고 불규칙한 생활 때문에 힘들 거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그런 걸로 속 썩인 적은 없어요. 제가 아침형이고 남편이 올빼미형이라 자는 시간이 안 맞긴 했지만 둘 다 A형인 데다 보수적이라서 잘 맞아요. 무엇보다 남편이 뭐든 지지해 주니까 든든하죠.”

아이들 교육을 위해 2001년 미국 유학을 결정했다. 다행히 시애틀에 시댁이 있어 시어머니가 아이들을 많이 돌봐줬다. 의지할 수 있는 가족들이 있기는 하지만 혼자 지내는 남편도 걱정되고 두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남편이 워낙 자상해서 한국에 있을 때는 많이 도와줬어요. 처음에는 저 혼자 모든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잘할 수 있을지 걱정되더라고요.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가 기숙사 생활하고, 졸업 후 취직하면 같이 있을 시간이 없잖아요. 아이들 어렸을 때는 제가 공부하고 일하느라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았는데, 이제라도 제가 옆에 바짝 붙어서 챙겨줘야죠.”

미국에서 시작한 제2의 인생, 현모양처 꿈을 이루고 나니…

미식축구 선수로 활동하는 동균이. 엄마의 운동 감각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처음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그녀만 바라보는 두 아들이 있어 더 부지런하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이들의 손을 잡고 30분씩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밥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챙겨주고, 등교할 때 차로 데려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올 시간에 맞춰 간식을 준비하고, 과제를 도와주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잠들 시간. 7년 동안 그녀는 평범한 엄마의 역할을 성실히 해왔다. 그 와중에 대학원 공부, IOC위원회 활동도 하면서 말이다.

“어려서부터 꿈이 현모양처였어요. 고추장, 된장도 직접 담갔고, 빵도 사서 먹이지 않고 직접 만들었죠. 결혼하고 나서 남편 내조하고 아이들 키우는 재미에 푹 빠져 정말 영락없는 현모양처로 지냈죠. 그런데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한 뒤로는 제 시간이 많이 남는 거예요. 영화를 보고 운동을 하고 와도 시간이 넉넉하니까 처음에는 불안했어요. 뭘 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요.”

그러다 남편의 권유로 연세대 대학원의 사회체육학과 석사 과정을 공부하기로 했다. 시애틀에 머물던 2005년에 스포츠 외교 전문 인력 국비 장학생으로 선발돼 워싱턴에서 1년 동안 어학연수를 하기도 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고, 1년 전에는 스포츠레저학과 박사 과정을 한 학기 동안 공부한 뒤, 지금은 휴학 중이다.

“제 삶의 우선순위는 항상 가족이에요. 제 시간도 소중하고, 제가 하는 일도 소중하지만 아이들에게 소홀하면서까지 성취하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대학원 공부를 위해 한국과 시애틀을 오가면서도 나름대로 아이들을 챙기긴 했는데, 큰아들이 내년에 고3 수험생이 되니까 지금은 옆에 계속 있어줘야 할 것 같아 휴학했어요.”

한국을 오가는 동안 남편도 챙길 수 있어 좋았지만 지금은 사춘기 아이들 엄마 역할에 더 집중해야 할 때. 다행히 요즘에는 남편이 예능 늦둥이가 되어 TV에 자주 나오기 때문에 그
재미에 산다.

“요즘은 미국에서도 한국 방송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볼 수 있잖아요. 애 아빠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미리 시간을 체크해 놨다가 새벽이래도 그 시간에 맞춰 일어나서 봐요. 웃으면서 농담하는 모습 보면 보고 싶기도 하고, 혈색이 좋아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지요(웃음).”

하루에도 몇 번씩 아빠와 통화 하는데도 사춘기 아들은 마음 한 귀퉁이가 허전한가보다. 그래서 방학 때마다 그녀는 아이들과 한국에 온다. 일 년에 두 번 정도 만나는 부자 다 보니, 그 달콤한 시간에 취해 아빠는 아들을 일터(라이브 카페)에도 데려가고 몸에 좋다는 보양식도 사 먹인다. 네 명의 생일을 몰아서 축하하는 파티를 여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얼마 전 시애틀을 4년 만에 찾은 남편은 아이들과 소중한 추억을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다 큰 아들을 욕실로 데리고 가 함께 목욕을 하고, 아이의 학교에도 찾아가 보고, 미식 축구를 하는 아들의 경기장을 찾아 응원도 했다. 아빠를 자주 만날 수 없는 아들들은 최근 방송에 출연하는 아빠를 보며 위안을 삼고 있다. 외국 아이들이 백두산 티셔츠를 입고 다니면서 “이게 정말 네 아빠가 만든 음악이냐”고 물어본다고 한다.

대통령상 받은 아들 열혈 교육기, 매일 기도로 시작하는 엄마의 하루

딸처럼 다정한 큰아들과 개구장이 둘째 아들은 그녀의 보물 1호.

지금 큰아들 동균이는 미국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이 설립한 민간 외교사절단이자 교육·봉사 단체인 ‘피플 투 피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성적이 우수한 데다 지역 봉사와 의료 봉사를 많이 하는 동균이는 미국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봉사 활동 대사로 활동 중인 큰아들은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동균이는 뭐든 찾아서 잘해요. 다섯 살 때 맹장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수술 후 통증이 사라지니까 그게 신기했나 봐요. 늘 의사가 돼서 아픈 사람을 고쳐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만 잘하는 게 아니라 의료 봉사도 열심히 다니고 있어요.”

운동을 잘하는 데다 전 과목 성적이 우수해 영재교육원에서 특별 지도를 받고 있다.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건 의대 진학에 도움이 되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 매주 교회에서 아이들을 돌봐주는 봉사 활동뿐 아니라 방학마다 한국에 갈 때 의료 봉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본다. 작년에는 세브란스병원의 국제진료센터에서 통역하는 봉사를 했다.

“미국에서도 사교육 열풍이 심해요. 학교 과제를 도와주거나 대학 진학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준비할 수 있는 학원도 있고, SAT 학원도 있죠.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런 공부를 시키는 것보다 봉사 활동을 통해 자신의 역할과 비전을 발견했으면 하는 마음에 그런 기회를 많이 가지려고 해요.”

그녀의 교육법은 명확했다. 운동과 봉사 활동. 미식 축구, 수영을 통해 건강한 몸을 단련하고, 건강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라는 것. 아이들은 그런 엄마의 의중을 잘 아는지, 바르고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단다. 아이들이 지쳐 있을 때마다 엄마가 건네는 짤막한 편지와 ‘힘내’라는 문자 메시지도 아이들에게 든든한 에너지가 된다.

그녀는 온 가족이 함께할 수 없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이 시간이 필요한 이유를 누구보다 잘 안다. 지금은 엄마 역할에 좀 더 충실할 때고,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자립하게 되면 한국으로 돌아와 아내 역할에 충실하려고 한다. 그리고 ‘수영 스타’ 최윤희가 해야 할 몫에 대해서도 자신의 속도대로 차근차근 해나가려고 한다.

취재_민은실 기자 사진 제공_KBS 2TV ‘여유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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