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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예능계 입시부정 뿌리뽑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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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1999년 11월 24일 아침, 우리는 또다시 예술인으로서 치욕적인 사건을 접하게 되었다. 6개 대학 10여명의 교수들이 수천만원씩을 받고 입시생들을 서로 봐주면서 합격시켰다는 것이다.

우리는 1990년대를 예능계 입시부정으로 연 바 있다. 그런데 행여 그 훈장을 놓칠세라 2000년을 또다시 예능계 입시비리 확대수사라는 타이틀로 열어나가고 있다. 참으로 참담하다.

언젠가 체육계 입시부정이 드러났을 때 교육부는 해당대학의 행정 및 재정적 제재를 약속했고, 해당자의 고발 및 파면 등의 조치를 공표한 바 있다. 그리고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연대책임을 철저히 묻겠다고 했다. 이러한 교육부의 의지가 제발 말한 대로 엄중히 실현됐으면 좋겠다.

돈이 좋아 부정을 저질렀다면 응당 형사처벌을 받아야 한다. 90년대 내내 그랬듯이 2000년대에도 예능계 입시부정은 크고 작게 지속될 것이다.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부정의 고리는 그때그때 엄중히 다스려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함이 옳다. 일단 곪아 터진 부위는 잘라내서 고치고 한편으로는 그 원인을 찾아 다음단계의 치료를 해야 할 것이다.

음악계 입시부정이라는 고질적이고 한국적인 풍토병은 몇가지 원인에서 출발한다. 첫째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음악에 대한 편협한 인식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통념적으로 이야기하는 음악은 전국 70여개 대학에서 길러내고 있는 서양음악 연주가들이 다루는 음악과 통한다. 즉 서양의 고전에 해당하는 18~19세기의 서양음악을 음악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 시기의 음악은 고도로 세련된 음색과 미감을 그 기저에 놓고 있으며, 우리의 역사 및 생활과는 거리가 있는 음악들이다. 따라서 현실적 구체성보다 현상적.피상적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으로 가득차 있다.

이러한 음악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우리 사회의 음악적 행위들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삶에 깊이 파고 들 수 없게 된 것이다. 즉 음악의 사회화가 안된다는 이야기다.

사회화가 안되면 음악인이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없게 되고, 먹고 살 수 없는 직업은 직업의 구실을 못하게 된다. 여기에서 두번째 원인이 파생된다.

현실성과 기능성이 떨어져도 아름답고 신비하게 고고한 자태를 유지하는 것이 음악이라는 인식은 곧 현실적으로 생산성이 없고 경제적인 득이 없어도 우아하게 살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부유층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 직업이 되기 힘든 음악가의 길은 그래서 '있는 집안' 의 여성이 주로 하게 되는 결과도 동시에 낳게 되었다.

다시 말해 어느정도 재력이 있는 집안의 자제가 우아한 졸업장을 목표로 입시에 전력투구하는 것이다. 예술은 뒷전이고 입학이 최대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세번째 원인이 다시 파생한다. 편안함에 쉽게 무너지는 것이 인간의 습성 중 하나라고 할때, 일부 약한 교수들이 돈 앞에 무너지는 부도덕한 행태가 초래되는 것이다.

이렇게 삼박자가 맞아 입시부정은 끊이지 않는 연례 행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인을 치료할 근본대책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음악과 삶의 밀접한 관계를 회복시켜야겠다. 그러자면 서양문화의 재생산 기능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연주계보다 창작계를 활성화하는 구도로 가야 한다. 우리의 폭넓은 삶의 구석구석에 살아 움직이는 인간과 삶을 드러내는 창작의 손길이 뻗쳐야 한다.

두번째는 경제력과 상관없이 재능을 가진 아이를 어려서부터 골라내어 저렴한 학비로 예술가를 키워낼 수 있는 교육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만 참으로 재능 있는 사람만이 예술가로 살아남아, 인간과 삶과 예술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셋째로 대학교육기관만이 비대해진 예술교육 구도를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려야 한다.

많은 재능 있는 인재들을 어려서는 폭넓게 뽑아서 교육하고, 그 중에 정말 좋은 인재들을 추려, 몇개의 특성화된 고등예술교육기관에서 길러내도록 하는 구도가 정착돼야 한다.

원인과 대책이 분명해지면 다음에 남는 것은 실천이다. 그 하나의 실천으로 마련된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예술 및 예술가 생산의 사이클을 더욱 완벽하게 완성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춰야 하며, 교육부에 속해 있는 수많은 예술계 대학 역시 예술이 숨쉴 수 있는 교육여건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어야 한다.

김춘미 (한국예술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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