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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다시 세운 조범현 감독 “솔직히, 7차전 때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 잠깐 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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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드라마 같은 한국시리즈를 연출한 KIA 타이거즈 조범현(49) 감독은 아직 단꿈에서 깨지 못했다. 26일 아침 인천 집에서 눈을 뜨고는 “내 집에서 잤는데 외박한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2009년 프로야구는 그의 해로 끝났다.

선수 시절부터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조 감독은 꼴찌 팀을 맡은 지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지휘했다. 조 감독을 전화로 인터뷰했다.

-우승 직후 패장이자 스승인 김성근 SK 감독을 찾아 인사했는데.

“경기 전 KIA가 이기든 지든 찾아뵙고 인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월드시리즈 못지않게 서로가 좋은 경기를 했기에 그랬다. (충암고 선수 시절부터) 스승인 김 감독님에게서 많이 배웠다. 감독님도 ‘어, 수고했다’고 격려해 주셨다.”

-2007·2008년 챔피언인 SK와 싸우는 것이 힘들지 않았나.

“플레이오프에서 두산이나 SK나 누가 이겨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두산도 워낙 강팀이라서. 한국시리즈 1·2차전을 이기고는 ‘SK가 쉽게 꺾일 팀은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경기를 할수록 무서운 팀이더라. 지치지 않고 투지는 더 강해졌다. 그런 팀을 이겨 더욱 기쁘다.”

-한국시리즈 2승2패, 3승3패가 됐을 때는 SK가 유리해 보였는데.

“맞다. (SK는 2007년 한국시리즈에서 2연패 뒤 4연승, 올해 플레이오프에서 2연패 뒤 3연승을 거뒀다) SK는 저력이 있다. 그러나 SK가 정규시즌 막판 19연승을 하고도 KIA에 1위를 내줬다. 그렇다면 우리가 더 강하고, 운이 따르는 팀 아닌가. 최종 7차전을 앞두고 선수들에게 그렇게 얘기했다.”

-7차전 6회 초까지 1-5로 뒤졌을 때 ‘지겠다’는 생각도 들었을 텐데.

“솔직히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그러나 내 표정이 굳어지거나 부산하게 움직인다면 선수들은 더 크게 동요한다. 나부터 마음을 가다듬었다. 우리 팀은 정규시즌 때나 한국시리즈 때나 7~8회 점수를 많이 냈다. 선수들에게 ‘찬스는 반드시 온다. 걱정 말라’고 주문했다.”

-타이거즈 출신도 아니고, 스타 출신도 아니다.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

“사실 지난해 6위를 하면서 (외부에서 흔드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2007년 말 부임했을 당시부터 ‘이러다가 집에 가는(유니폼을 벗는) 것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았다. 나는 관두면 되지만 타이거즈 야구를 생각하면 얼마나 무책임한 생각인가.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당장은 아니라도 2~3년 뒤에는 우승할 수 있는 전력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선수들이 그 마음을 잘 헤아려 줬다.”

-그런 의미로 프랜차이즈 스타 이종범과 이대진을 지켜 준 것인가.

“올해 초 구단이 프리에이전트(FA) 영입을 얘기했을 때 나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FA 1~2명을 영입한다고 당장 성적이 난다는 보장이 없었다. 대신 있는 선수들을 잘 추스르자고 했다. 은퇴 위기에 몰렸던 이종범이나 세 차례나 어깨수술을 받은 이대진은 팀의 정신적 지주다. 과거만 화려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훈련 태도나 팀을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한 선수들이다. 이종범이 다시 잘 뛰고, 이대진이 통산 100승(9월 11일 한화전)을 하는 모습을 선수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KIA가 좋은 성적을 내자 팬들이 ‘조갈량(조범현+제갈량)’이라는 별명을 붙여 줬다.

“타이거즈가 과거 아홉 차례 우승한 만큼 KIA 팬들의 야구 사랑은 정말 뜨겁다. 이번 우승으로 그들의 자존심을 세워 드린 것 같아 기쁘다. ‘조갈량’이라는 별명은 황송하기도 하고, 내가 이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요즘엔 친구들도 나를 ‘조갈량’이라고 부른다. (웃음)”

-조 감독이 지향하는 야구와 현재 KIA 야구는 얼마나 일치한다고 보는가.

“글쎄, 70~80% 정도? 보완해야 할 부분이 많다. 선수들이 세밀한 플레이를 하고, 조직적인 움직임을 보이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팀이 더 강해지려면 주전과 백업선수의 격차가 줄어야 한다. 나도 선수들도 딱 3일만 쉰다. 28일부터는 광주구장에서 다시 훈련에 들어간다.”

김식 기자

조범현 감독은

◆출생=1960년 10월 1일 ◆학교=대구초-대건중-대건고(충암고)-인하대

◆가족=부인 성상희씨와 2녀 ◆좋아하는 선배=김응용 삼성 사장, 김성근 SK 감독

◆취미=등산  ◆대우=연봉 2억원, 계약금 2억원(2년 계약) 등 총 6억원

◆경력= 1982년 OB 프로 입단 -91년 삼성 이적 -93년 쌍방울 코치 -2000년 삼성 코치 -2003년 SK 감독 -2007년 KIA 코치 -2008년 KIA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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