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이타마현 고구려신사 지키는 고마 스미오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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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일본 사이타마(埼玉)현 히다카(日高)시. 이곳에는 한국 사람에게 각별한 느낌을 주는 신사(神社)가 하나 있다.

1천3백여년 전 고구려가 망하자 일본으로 망명한 고구려 왕족 약광(若光)을 모신 고마(高麗)신사. 일본에서 유일하게 고구려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젠 국내에서조차 쉽게 찾기 힘든 '천하대장군' 과 '지하여장군' 을 지나 정문 입구에 이르면 이곳을 찾은 일본과 한국 유명인사들의 이름이 적힌 나무 팻말 3백여개가 매달려 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 신사를 지키는 '궁사(宮司)' 이자 약광의 59대 직계 손이라는 올해 72세의 고마 스미오(高麗澄雄)옹이 기거하는 곳이 나온다. 그는 고구려인의 피가 섞인 것을 증명해주는 '고마' 라는 성(姓)에 대해 조상 대대로 높은 긍지를 갖고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일본에 건너온 1천8백여명의 고구려인들은 자신들이 고구려에서 누리던 지위를 그대로 인정받는 등 일본인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전한 종이 만드는 방법이나 옷감짜는 법 등은 당시 이들에게는 첨단 기술이었죠. 高麗村.高麗川 등 지금까지 남은 지명에서도 느껴지듯 高麗라는 명칭에는 '존경' 의 의미가 들어있는 것이지요. "

고구려인들의 높은 기상과 발달된 문물이 일본인에게 어떤 영감이라도 준 것일까. 고마옹은 이 신사를 참배하면 출세한다는 속설이 일본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있다고 귀뜀했다.

"이곳을 참배한 뒤 총리대신이 된 사람이 6명입니다.사법부.최고재판소.중의원 의장.회사사장 등 크게 된 사람은 부지기수죠. 현재 사이타마현 지사도 이곳을 참배한 후 중의원 의원에 당선됐고 그의 둘째 딸은 고마신사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을 정도입니다. "

고구려 왕족을 모시는 신사에 대해 일본인들의 반발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밝은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명치유신 이후 일본은 조선보다 먼저 선진화됐다고 생각하게 됐으나, 한국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죠. 양국간 이런 프라이드 때문에 결국 서로 감정이 생기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옛날부터 세워진 곳이기 때문에 일본인들도 인정해주는 것 같습니다. "

고마옹은 "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 고구려의 숨결을 느꼈으면 한다" 며 머지않아 자신의 뒤를 이어 궁사가 될 늦둥이 아들 고마 후미야쓰(高麗文康.33)의 손을 꼭 쥐었다.

사이타마〓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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