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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도 고엽제 피해…창구개설뒤 신고 1백30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오죽했으면 농약을 먹고 죽을 생각까지 했겠습니까?"

27년 동안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부병으로 고생해온 김영기(金永基.65.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리)씨. 金씨는 최근에야 자신의 병이 철책선에 뿌려진 고엽제 때문임을 알게 됐다.

金씨가 민북마을인 생창리에 입주한 것은 지난 70년. 金씨는 황무지에 농토를 일궜다. 철책선이 북쪽으로 약간 옮겨가면서 68, 69년엔 고엽제가 뿌려졌던 구 철책선 지역도 개간했다.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은 72년. 붉은 반점이 온 몸으로 번졌다. 심한 경우에는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했다. 수많은 병원을 다녔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같은 마을 이능구(李能九.63.농업)씨는 증세가 더 심해 3년 전부터 집 바깥 출입과 농삿일도 자제하고 있다. 15년 전부터 머리 뒤 등 온 몸에 발진이 생겼다.

당시 군인들에게 경운기를 빌려주고 작업도 했다는 장춘길(張春吉.60)씨도 머리 뒤 발진으로 고생하고 있다.

현재 생창리에만 이 증세를 보이고 있는 주민은 10여명. 지난해 숨진 申모(55)씨도 같은 증세를 앓아왔다.

21일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고엽제 후유증을 고엽제피해 신고센터에 신고한 이원철(李遠澈.39.충남 천안시 직산면)씨도 철원 주민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토치카 만드는 일을 하셔서 2세 때부터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철원에서 살았고 산야를 뛰어다니며 논 것이 고엽제 접촉의 원인이 된 것 같다" 고 말했다.

그는 "오장육부가 다 골병들었다. 가려움증으로 다리는 성한 데가 없고 몇년새 몸무게도 20㎏ 가량 빠졌다" 고 말하는 중에도 심하게 손을 떨며 물을 계속 찾았다.

李씨의 초등학생인 딸(10)과 아들(9)도 가슴.팔 등에 뾰루지가 여러군데 나 고생하고 있다.

한편 한국고엽제상의자회 중앙회(회장 張乙基.53.대전시)에는 피해 신고창구가 마련된 지 사흘 만에 1백30건이 넘는 비무장지대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들은 철원지역 농민을 비롯해 68, 69년 무렵 비무장지대에서 군 복무를 했던 50대 남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전형적인 고엽제 후유증으로 보이는 피부질환과 신경계통 질환을 호소하고 있다.

신고접수처 042-635-1954.

철원〓이찬호, 대전〓이석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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