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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살리는 의사 이왕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종플루의 공포가 누그러들지 않는 가운데, 과연 어느 병원이 신종플루를 잘 치료하는지 의료 전문가들에게 수소문했다. 결과는 예상 외였다.

의료 전문가들은 아산병원이나 삼성병원을 꼽기도 전에 이름도 낯선 병원을 들었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관동의대 명지병원이었다. 명지병원은 신종플루 거점병원으로 선정된 뒤 1주일도 지나지 않아 신종플루 대응 진료센터를 설치했다. 이 곳에 드나드는 신종플루 환자는 일반 환자와 다른 출입구를 사용하도록 했다. 또 신종플루 환자만 치료하는 격리병동을 지정했다.

이처럼 명지병원이 전국 대학병원 중 무언가 뛰어나다고 평가를 받기는 드문 일이다. 명지병원은 전국 40개 대학병원 중 매출이나 규모, 연구실적에서 꼴찌를 다툰다. 이런 곳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젊은 의사 이왕준(45) 인천사랑병원장이 변화의 불을 댕겼다. 이 원장은 7월 초 병원 운영자금을 출연하는 조건으로 경영권을 넘겨받으면서 명지병원이 속한 의료법인 명지의료재단에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병상 기준 규모가 400대 620으로 밀리는 인천사랑병원이 명지병원을 인수하자 ‘고래가 새우를 먹었다’는 말이 나왔다.

이제 그가 취임한 지 약 100일이 지났다. 명지병원은 아직 뚜렷하진 않지만 변신의 단초를 보이고 있다. 우선 신종플루에 기민하게 대응하면서 외래환자를 100일 전보다 20% 더 받았다. 아울러 비용을 줄여 흑자로 돌아섰다. 이 이사장은 “주로 물류비용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주사바늘ㆍ약품 등의 유통구조를 단순화했어요.” 인건비는 줄이지 않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이 이사장은 취임하는 날 거창한 비전을 선포했다. “향후 10년 안에 관동의대를 한국의 10대 의과대학으로, 명지병원을 10대 병원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와 관련해 기자에게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요”라며 되물었다. 그는 “병원 인수를 준비하는 2년여 동안 명지병원의 장단점을 분석한 끝에 가능성을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첨단장비나 스타 의사가 없더라도, 병원을 환자 중심으로 운영함으로써 의료 서비스의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 중심 병원시스템은 하나 둘 가동에 들어갔다. 명지병원은 외래진료를 이전보다 30분 일찍 시작하고 원무수납은 30분 늦게 마감한다. 다음달부터는 통합입원창구를 운영한다. 환자는 한 곳에서 검사 받은 뒤 바로 그 자리에서 입원 수속을 마치게 된다.

이런 변화가 모여 얼마나 큰 경쟁력이 될지 판단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청년의사 이왕준이 그동안 걸어온 길은 그의 향후 행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서울의대 외과 전문의였던 그는 1998년 부도난 세광병원을 인수해 인천사랑병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환골탈태시켰다. 인천사랑병원은 10년 동안 매출이 60억원에서 260억원으로 증가했고 흑자로 전환했다. 지난해 영업이익 약 18억원을 올렸다.

이 이사장은 외과의사로서는 칼을 놓았다. 그러나 환자를 위한 병원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칼을 놓지 않을 생각이다.

임성은 이코노미스트 기자
사진: 이찬원 기자

* 상세한 내용은 26일 발매되는 이코노미스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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