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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역사 새로 쓰는 이스라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유럽 유대인의 팔레스타인 이주는 1880년대에 시작됐다. 유럽에 배타적 민족주의가 극성을 부림에 따라 차별과 박해가 심해지자 유대인도 민족의 옛땅에 자기 나라를 세우자는 시오니즘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시오니즘의 꿈을 실현한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은 아랍인의 희생을 비탕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에 아랍과의 갈등은 이스라엘의 숙명적인 짐이 된다.

유럽 역사의 산물이다. 유럽 민족주의에 자극받아 시오니즘이 일어났고 나치 대학살로 건국의 계기를 맞은 것이었다. 아랍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난데없이 나타난 침입자에게 대대로 살아온 땅을 빼앗긴 셈이다.

아랍세계와 갈등을 이어오는 동안 이스라엘의 학교에서는 이스라엘의 입장을 정당화하는 역사만을 가르쳤다. 백년 전 팔레스타인은 거의 비어있는 땅이었고 그 땅을 엄청나게 비싼 값으로 사들인 유대인들은 주변의 아랍인과 도와가며 살려 애썼다. 그러나 오만한 아랍인들은 박해를 피해 온 유대인들을 이 땅에도 발붙이지 못하게 하려 들었다. 그들은 유엔의 결정을 무시하고 이스라엘을 없애버리려 전쟁을 걸었다. 이스라엘은 병력과 무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생존 의지 하나로 침략을 물리쳤다. 팔레스타인 난민 역시 이스라엘이 쫓아낸 것이 아니라 스스로 떠난 것이라고 종래의 역사책들은 설명했다.

역사교육 방침이 50년만에 바뀌고 있다. 이번 학기부터 쓰이는 새 역사책들은 독선적 국수주의를 벗어난 것이다. 아랍인의 난처한 입장도 설명돼 있고 유대인측의 잘못된 판단이나 무리한 정책도 지적돼 있다. 시오니즘과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적과 영광으로 찬양만 하기보다 훨씬 합리적인 설명을 시도하고 있다.

새 책들은 5년 전 이츠하크 라빈 총리 정권하에서 준비되기 시작했다. 베냐민 네타냐후의 보수정권 아래서도 묵묵히 진행돼 온 결과 다시 평화정책으로 돌아간 에후드 바라크 총리 집권후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수정주의' 역사관은 이스라엘 국민의식을 바꿔놓고 있다. 80년대부터 국가문서 공개에 따라 종래 독선적 역사관의 허위가 벗겨지기 시작한 결과다. 학교교육에는 이제 반영되기 시작하고 있지만 학계에선 이미 주류를 형성, 대(對)아랍 평화정책 수립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민족이란 '과거에 대한 착각과 이웃에 대한 증오심을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 이라고 19세기말 한 프랑스 철학자가 비꼰 일이 있다. 이제 이스라엘은 착각과 증오심을 배제한 민족주의 정립에 나서고 있다. 역사가 바로 서려면 합리성과 객관성의 두 발을 땅에 디뎌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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