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승진 시험문제 "이청장이 쓴 책서 출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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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경북 모경찰서에 근무 중인 李모(31)순경은 최근 경찰청에서 일선에 내려보낸 '경찰청장 취임식' 비디오를 보고 크게 낙담했다.

"제가 경찰대학장으로 있으면서 경찰 실무를 집대성해 경찰학 기본교재 11권과 '경찰실무전서' 를 출간했고 이를 바탕으로 서울청장 재직시에는 실무문제집을 발간했습니다. 이번 승진시험부터는 바로 이 문제집에서 출제해 실무에 밝은 직원이 승진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

1년여 전부터 경장 승진시험을 준비해온 李순경은 시험을 불과 두달여 앞두고 과목이 바뀐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60만원을 들여 책과 테이프를 사서 공부해온 李순경은 지난 15일 취임한 이무영(李茂永)경찰청장이 쓴 경찰실무전서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허사였다. 이미 절판된 것이다. 李순경은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했는데 느닷없이 출제방침이 변경돼 피해를 보게 됐다" 며 "결국 누가 먼저 책을 구해 빨리 외우느냐에 따라 승진 여부가 판가름날 판" 이라며 허탈해 했다.

경찰청장이 자탔?쓴 책에서 승진시험 문제를 출제하고 과목도 수사.행정 등 실무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취임사에서 선언한 뒤 승진시험을 준비해온 경찰관들이 혼선을 빚고 일부에서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경찰관 승진시험 과목은 계급(경장~경정)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96년부터 3~4개 과목을 치른다. 형법.형사소송법.행정학.경찰법 등이 필수과목이고 행정실무.형사실무.외국어 등 실무분야 가운데 1~2과목을 선택한다.

특히 계급이 올라갈수록 형법 등 법률 과목의 비중이 높아 대부분의 경찰관이 이 분야 공부에 매달리고 있다.

그러나 李청장이 실무 중시 방침을 밝힘에 따라 내년 1~3월에 실시되는 승진시험을 준비해온 대상자들은 그동안의 공부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하게 된 것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앞으로 대민 봉사의 질을 높이기 위해 경찰의 실무 능력을 향상시킬 却娥?있어 실무 위주로 시험을 치를 복안을 밝힌 것" 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다급해진 1만5천여명의 수험생들은 절판된 책을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책을 확보하지 못한 경찰관들은 "시험 과목과 방침을 변경하더라도 1년 정도는 유예해야 되는 것 아니냐" 고 항의하고 있다.

경찰관들이 책을 구할 수 없느냐고 아우성치자 이 책을 발간한 경찰대학측은 재판을 발간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인쇄업자가 선정되는 대로 다음달 중순께 실무문제집도 펴낼 예정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아직 과목을 어떻게 변경할 것인지 확정된 것은 아니고 작업 중" 이라며 "가급적 피해가 없도록 단계적으로 과목을 바꾸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고 밝혔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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